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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2019년 12월 29일 주일설교_나사렛 사람 예수
2019-12-29 17:10:30
전미숙
조회수   94

주일설교

 

나사렛 사람 예수

 

 

성 경: 마태복음 2:13-23

설교자: 원영만 목사

설교일: 2019. 12. 29

 

 

 

13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16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19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22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마태복음 2:13-23

 

 

 

거룩한 주일 하나님의 전에 나오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크신 은총과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의 말씀으로 『나사렛 사람 예수』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온 인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은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전해준 말과 천군 천사의 찬양 내용처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여기에는 모든 이가 포함됩니다. 예외 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 멀리 이방인에게도 예수의 나심은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죄 가운데 상한 이들에게도, 주님을 떠나 멀리 유리방황하는 이들에게도 예수 탄생은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밤, 하늘은 홀연하게 밝았습니다. 천군과 천사들의 찬송이 하늘에 울려 퍼질 때 하늘은 온통 대낮같이 밝게 됩니다. 아니 대낮보다도 더 밝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밝은 빛은 멀리 떨어져 있던 동방의 박사들에게까지 보였습니다. 늘 하늘의 별을 연구하던 동방박사들이 이 신비로운 빛을 따라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연구했고 이 일은 메시아가 태어나실 때의 징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가장 값진 예물을 준비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왕이 어디에 나셨는지 물었습니다’ 온 예루살렘은 이 이야기를 듣고 소동했습니다. 서기관들은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탄생하신다는 말씀을 찾아 알려주었습니다. 헤롯 왕은 동방박사들을 조용히 불러 나신 왕을 찾으면 자신에게도 알려달라고 귀띔을 해놓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갑자기 별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을 아기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별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뻐하고 또 기뻐하였습니다. 언제나 길을 나설 때 그다음의 인도하심이 나타납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순종하여 길을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별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님이 계시는 집에 들어가 나신 아기 왕께 경배하고 유황, 몰약, 황금 준비해간 보화를 드렸습니다.

 

꿈에 천사가 동방박사들에게 나타나 헤롯에게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다른 길로 해서 자신의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헤롯이 이 사실을 늦게 알아차리고는 매우 분노했습니다. 헤롯 왕은 베들레헴에 군사들을 보내어 두 살 미만의 남자아이 모두를 죽이라 명합니다. 헤롯 왕은 권력에 매우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주전 7년 그는 자신의 두 아들을 사형을 시켜 죽였습니다. 또한 주전 4년에 그는 또 다른 아들을 죽였습니다. 아내도 죽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것 같으면 무자비하게 학살했습니다.

 

백성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던 헤롯 왕은 자신의 임종 앞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이 죽었을 때 기뻐하지 못하도록 한 가정에 한 사람씩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백성들이 자신의 죽음을 기뻐하지 못하도록 백성들의 존경을 받던 랍비들을 잡아서 자신이 죽는 날 그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헤롯 왕은 매우 포악한 왕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유능하고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전략적인 목적으로 제3성전을 웅장하게 세운 인물이기도 하였지만, 자신의 권력 앞에 장애물이 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악한 왕이요, 무자비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무자비한 명령으로 작은 마을 베들레헴과 그 지경의 모든 곳에 통곡 소리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스런 아이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찢어지도록 비통했겠습니까? 그 땅은 슬픔과 절규로 가득한 애통의 땅이 되었습니다. ‘라마에 소리가 들려왔다. 울부짖으며, 크게 슬피 우는 소리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우는데,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라마는 라헬의 무덤이 있던 장소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망했을 때 포로가 되어 끌려가던 사람들이 집합했던 장소가 라마입니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애통보다 더 큰 애통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래전 시골 마을에는 가끔 정신병을 앓는, 미친 사람들이 있곤 했습니다. 특별히 젊은 여자 중에 정신병을 앓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아이를 잃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고통을 참아낼 수가 없었기에 미쳐버렸습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복된 땅 베들레헴은 곧바로 슬픔의 땅,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 고통받는 이들이 절규하던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천사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에게 나타나 ‘헤롯이 아이를 찾아 죽이려고 하니 일어나서 아기와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내가 너에게 말해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하였습니다.

 

언제나 말없이 순종하는 아버지 요셉은 곧바로 일어납니다. 그날 밤에, 밤사이 아기와 어머니를 데라고 이집트로 내려가 피신합니다. 헤롯이 죽을 때까지 아기 예수님은 이집트에 있었습니다. 성경엔 이미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 말씀이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나심은 어떠한 악한 존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를 보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일하심을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평안하게 합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에서 우리를 끊어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주님의 손은 강하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주님의 날개로 덮어주실 때 우리는 언제나 안전합니다. 그 어떤 사람이나 악마와 어둠으로부터도 안전합니다. 그러니 두려워 마십시오.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놀라운 말씀입니다.

 

시간이 지나 헤롯이 죽었습니다. 그 대단하던 헤롯이 죽은 것입니다. 여러분 ‘헤롯’은 죽습니다. 우리 삶의 문제를 일으키는 모든 것도 때가 되면 사라지고 없어집니다. 그렇게 대단하게 보였던, 도저히 더 이상 앞이 보일 것 같지 않던 문제들도, 우리에게 집요하게 악을 행하는 이들도 때가 되면 사라져 없어져 버립니다. 믿어야 합니다. 두려움의 반대는 믿음입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영원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올 때, 그때 ‘헤롯은 죽는다’ 이 말을 생각하고 묵상해 보십시오.

 

언젠가 노아 홍수 이야기를 계속해서 설교하다가 이 말씀이 매우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홍수가 그쳤다.” 홍수가 그쳤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하게 들려왔습니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홍수도 때가 되니 그쳤습니다. ‘홍수는 그칩니다’, ‘헤롯은 죽습니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인내하십시오. 참고 견디어야 하겠습니다. 홍수에 노아가 방주에 피하였듯, 요셉이 애굽에서 주님의 날개 아래 피하였듯, 헤롯이 득세할 때, 홍수가 창궐할 때, 문제가 몰려올 때, 두려움이 집요하게 찾아올 때 주님께 피해야 하겠습니다.

 

헤롯이 죽은 뒤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머물던 요셉의 꿈에 나타나 ‘일어나라.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 땅을 떠나라. 그 아이의 목숨을 노리던 자가 죽었다’ 했습니다. 이에 요셉은 일어났습니다. 언제나 요셉은 꿈에 계시를 받고 바로 일어났습니다. 아기 예수님에게는 요셉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태어나시는 곳에는 요셉과 같은 보호막이 있어야 합니다. 

 

뿌려진 씨앗이 열매 맺으려면 말씀을 가지고 지켜야(keep) 합니다. 그리고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그때 그 씨앗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이 좋은 땅이지요. 열매 맺는 땅입니다.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이야기를 듣다가, 강화에 ‘순무’가 있습니다. ‘순무 김치’가 유명합니다. 대학 때부터 강화도 친구가 몇 명이 있어서 순무 김치 먹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강화에 심으면 그렇게 잘 되는 순무가 다리 건너 김포에 심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땅이 중요합니다. 땅이 맞아야 자랍니다. 언제나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모든 것 그대로 내려놓고 일어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좋은 땅이 돼야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요셉은 헤롯 왕 다음 그의 아들 중 악하기로 소문난 ‘아켈라오’가 유다 지방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유다 지방으로 돌아가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때 그는 다시 꿈을 통해 지시를 받습니다. 그리고는 갈릴리 지방으로 물러납니다. 갈릴리로 물러갔다는 말은 갈릴리가 외진 땅이요 이방인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중에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가서 살게 되었는데, 나사렛은 말 그대로 동네였습니다. 아주 작은 곳이었습니다. 또한 그리 좋은 곳이 못 되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이 기록하고 있는 바로 그분을 만났소, 나사렛 사람 예수요’라고 했더니 곧바로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1:45-46) 했습니다. 나사렛은 사실 좋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언자들을 시켜서 말씀하신 대로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선한 것이라고는 나올 수 없던 마을 ‘나사렛’, 절망보다 더 나쁜 것이 전혀 소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대가 없는 겁니다. 절망은 기대가 있기 때문에 절망하는 거지요. ‘그 나사렛’이 다른 의미로 불려지게 됩니다. 헬라, 로마와 그리스 문화권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그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셈족, 즉 히브리 문화권에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나조레이’, 즉 나사렛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십자가 명패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에 붙였다. 그 명패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요19:19) 적혀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저 사람이 누구인가?’ 물었고, ‘갈릴리 나사렛 예수’라고 대답했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에게 베드로가 외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앉은뱅이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이 일로 인해 매우 놀랄 때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설교합니다. ‘여러분 모두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성하게 된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려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행4:10) 여기에서도 나사렛 예수입니다.

 

회당의 귀신들린 사람도 이렇게 말합니다. ‘아, 나사렛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눅4:34) 

 

읽어주신 본문에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도 나사렛 사람들이라 불립니다. 유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도 사실 나사렛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하는 이 말씀에 구약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마태복음의 저자는 다른 탄생 기사를 적을 때 구약의 어디에서 인용하였는지를 밝힙니다. 그러나 이 ‘나사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 이 말씀은 구체적인 구약의 인용이 없습니다. 사실 찾아보아도 쉽게 찾아낼 수는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연구하고 묵상하였습니다.

 

나사렛의 헬라어 번역은 ‘나조라이오스’(nazoraios)와 ‘나조레노스’(nazorenos)라고 하는데, 나사렛은 히브리어 ‘네제르’(nezer)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대강절에 많이 읽었던‘이새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움트고 그 뿌리에서 가지가 돋아나리라.’(이사야 11:1) 여기서 새싹, 그리고 가지가 바로 ‘네제르’(nezer)입니다. 이미 죽은 듯 보이는 그 그루터기에서 돋아오른 새싹이 ‘네제르’, 즉 ‘나사렛’입니다. 새로운 싹이 뿌리에서 돋아난 것입니다. 뿌리인 하나님의 약속에서 움텄다는 뜻입니다. ‘네제르’라는 히브리 단어는 히브리 랍비들과 쿰란 공동체에서도 메시아를 가리키는 매우 중요한 표현이었습니다. ‘네제르’ 말고도 가지, 순, 새싹 등이 메시아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의미는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새싹’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바로 그곳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새로운 역사입니다. 그루터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절단 난 것 같은 인생에 있어서 절체절명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 어떤 희망도, 어떤 가능성도, 어떤 미래도 없어 보이는 바로 그런 자리입니다. 신비롭게도 그런 곳에서 태어나시는 분이 ‘예수’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나사렛 예수’입니다. ‘그루터기에 돋아난 새싹’이지요.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을 때,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사라질 때,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붙들 것이 남아있으면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것이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 생각할 때 바로 그때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게 되는 때입니다.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새싹,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필요한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님이야! 모든 것이 끝났다 절망하는 그 절망의 땅에 새싹으로 움트시고 돋아나는 분이 예수님이야.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거야! 주님께서 이 자리에서도 새로운 싹으로 돋아나실 거야. 그러나 절망하지 말아라. 그리고 그 위에 성령이 임하시어 우리를 새롭게 하실 거야’ 말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는 그 이방 어두운 그늘진 곳에 친히 들어가셔서 그들을 구원하여 내셨습니다. 그분은 빛이 되셨고, 새싹이 되셨고, 새순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새싹, 나사렛 예수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구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 주님께서 친히 고난 받으셨습니다. 그는 천사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시고, 주님께서 친히 그들을 구원하여 주셨다. 사랑과 긍휼로 그들을 구해 내셨고 옛적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치켜들고 안아 주셨다.’(이사야 63:7-9) 했습니다.

 

예수께서 다만 잠시 동안 낮아지셔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심으로 영광과 존귀와 면류관을 받아 쓰신 것을 우리가 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자녀를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실 때,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으로써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분은 “보십시오,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도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또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 죽음의 세력을 잡고 있던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천사들을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을 도와주십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백성의 죄를 대신 갚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몸소 시험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받는 이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히브리서 2:9-18)

 

예수님은 ‘나사렛’ 땅에 친히 내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머무셨습니다. 그리고 ‘네제르’ 나사렛, 즉 새싹, 새순이 되어 주셨습니다. 나사렛은 절단 난 자리, 모든 곳입니다. 또한 나사렛은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그랬고, 주님의 십자가가 그랬습니다. 십자가는 모든 것이 끝난 자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서 새로운 부활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죽음의 장소, 생명과 가능성은 일도 없는(0%) 그곳에서 생명의 영으로 새로운 부활의 아침을 열어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나사렛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나사렛 사람들입니다. 잘려진 그루터기에서 돋아나는 새싹, 새순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주님과 함께하면 언제나 새로운 희망이 있습니다. 이젠 끝났어. 내 인생은 종 쳤어. 우리 가정은 완전히 끝났어. 생각될 때 ‘나사렛 예수’ 이름을 부르세요.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습니다. 나사렛 예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선포하세요. 사막에 샘이 나게 하시고 사막 강이 흐르게 하시고 도저히 길이 있을 수 없는 광야에 길을 내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새싹 예수.’ 우리는 나사렛 사람입니다. 그루터기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새싹을 움트이고 꽃피우고 열매 맺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나 예수를 믿는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가는 나사렛 사람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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