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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2020년 1월 5일 주일설교_진리가 무엇이뇨?
2020-01-05 15:42:11
전미숙
조회수   95

주일설교

 

진리가 무엇이뇨?

 

 

성 경: 요한복음 1:10-18

설교자: 원영만 목사

설교일: 2020. 1. 5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10-18

 

 

거룩한 주일 주님 전에 나오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특별히 우리교회 처음 나오신 분들이나, 오랜만에 방문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020년 새해, 신년 첫 주일에 거룩한 성소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크신 은총과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어드린 말씀으로 『진리가 무엇이뇨?』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세상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대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하시던 날 빌라도 법정에서 빌라도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당신은 왕이요?” 빌라도가 묻습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요.”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태어났고,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소.” 빌라도가 다시 예수께 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뇨?’(요18:36-3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친히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진리를 증언하기 위함’이셨습니다. 빌라도가 질문한 것처럼, 우리도 질문할 수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일까요?” 성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누군가 나에게 묻지 않았을 때는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그것을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길이시오, 진리이시오,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길’, ‘생명’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진리’, ‘진리’는 과연 무엇입니까?

 

보혜사 성령님도 ‘진리의 영’이라고 했습니다.(요14:17) 진리의 영이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요16:13) 너희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하셨습니다. 너희는 ‘진리’로 자유케 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진리가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읽어 주신 본문은 이렇습니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자기 땅에 왔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마28:20)

 

많은 이들은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는 예수님은 발견해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를 발견해 내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우리 가운데 계신 그분을 볼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주를 보게 합니다. 이 믿음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납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이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은총은 그분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유력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영접하는 자’와 ‘믿는 자’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요3:36) 주님께서 부으시는 선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거부하지 않는 것이요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믿음은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은 들음에서 생깁니다.

 

믿음과 순종은 같은 말입니다. 다른 말이 아닙니다. 믿는 자는 순종합니다. 순종하는 자는 그의 참믿음이 순종으로 드러나는 것뿐입니다.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지 못한다.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요3:36)

 

예수님을 먼저 알아본 사람이 있었지요.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그런데 그도 처음에부터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도 이분을 알지 못했습니다.’(요1:31) ‘나도 이분을 몰랐습니다.’(요1:33) 세례자 요한도 두 번이나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그분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보았습니다.’(요1:34) 그리고는 바로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게 됩니다.(요1:34) 새해 우리에게 주어진 제일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 놓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한 복을 누리게 되시는 여러분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셨습니다.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복 주시는 분이 여호와이신데, 그 복을 ‘그리스도 안에’ 담아 놓으셨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가서의 말씀처럼 예수가 복 항아리입니다. 쏟아지는 향 기름병입니다. 그렇기에 예수가 보여야 합니다. 예수가 보이는 이들이 복 있는 자들입니다.

 

세례 요한은 어떻게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을까요? 그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물로 세례를 주라는’ 주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그 가운데 성령께서 어떤 사람 위에 내려와 머무는 것을 보게 되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는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이 맡기신 일, 즉 세례를 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분 위에 머무는 것이 보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이에게 주님이 보입니다. 주의 말씀을 무시하고 마음에 두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이에게는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변화산에서 사도들은 직접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올 한해 우리의 귀를 주님께 향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작은 감동 주실 때 즉각 순종하고 실천하는 가운데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보았습니다’ 고백했던 세례 요한처럼 주님을 뵈옵게 되시기 바랍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매우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 마음과 눈의 문제일 뿐이지요. 주님을 보게 된 이들이 주님을 보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의 영광은 하나님의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우리가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충만합니다. 우리는 그분으로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올해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있습니다. 예수입니다. 선물을 받되, 다음에 접속사 카이(kai)가 나오는데 계속해서 받고 또 받고, 받고 또 받는다는 뜻입니다.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받고 그 은혜 위에 또 받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더욱더 받고 또 받는 것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에서 ‘위에’는 ‘안티’(αντὶ)인데 ‘대체하다’라는 뜻입니다. 새로운 은혜가 이미 받았던 은혜에 계속해서 대체한다는 의미입니다. 영속적으로 은혜가 또 다른 은혜로 계속해서 대체되는 것입니다. 이를 저는 ‘무진장한 은혜’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존 웨슬리는 오늘 은혜로 내일을 못살아도 내일에 은혜 주셔서 내일 살게 하신다 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 말라 했지요. 어제 은혜로 오늘 못삽니다. 오늘 은혜는 오늘의 은혜로 살 수 있지요. 오늘 주시는 은혜를 구하며 받아야겠습니다. 때 따라 주시는 은혜, 날마다 주시는 은혜를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무진장’은 ‘다함이 없는 곳간’이란 뜻입니다. 어떤 창고가 있는데 꺼내고 또 꺼내고 계속 꺼내는 끝이 없는 창고입니다. 은혜를 받고 또 받는데도 끝이 없어요 이것이 ‘무진장한 은혜’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라는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무진장한 은혜의 곳간이 ‘예수’입니다. 그분으로부터 받고 또 받는 것입니다.

 

‘은혜’, ‘카리스’라는 단어는 요한복음에 이 세 절 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은혜는 매우 중요하고 단호한 말씀이에요. 무진장한 은혜를 받고 또 받는 새해 되셔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예수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입니다. ‘예수를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했습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겨났다. 요한복음에서는 계속해서 이 ‘진리’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빌라도의 질문 ‘진리가 무엇이뇨?’까지 계속됩니다. 예수 안에는 ‘진리’가 충만하고, 예수는 진리를 드러내셨고, 진리를 증언하러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진리다’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진리는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개념이 결합 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어 ‘에메트’는 견고하다, 안정되다, 사람에게 쓰일 때에는 확고하다, 믿음직하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헬라어에서 ‘진리’, ‘알레세이야’는 정말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진리’는 실체 그 자체 혹은 그의 ‘현시’, 즉 그 실체가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영원한 실체가 인간에게 드러나는 것 이것을 나타내는 단어가 바로 ‘진리’입니다.(다드, Dodd) 특별히 하나님의 실체, 그분의 현시에 있어서 인격적인 특성이 드러날 때 요한복음에서는 ‘진리’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진리를 알라’는 말은(요8:32)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파악하라는 뜻입니다.

 

‘진리가 무엇이뇨?’라는 질문은 “그분이 바로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바로 영원한 영이 되신다. 이것이 바로 진리가 아닌가?” 답할 수 있겠습니다. 진리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계시 되심이 ‘진리’라는 뜻입니다. 진리는 면사포가 벗겨진다는 뜻입니다. 베일이 벗겨진다는 뜻입니다. 진리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실재가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는 의미라 하겠습니다. 신명기서에서 위대한 예언자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신18:15)

 

이스라엘에 많은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 같은 예언자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주님과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었던 사람이다.’(신34:10) 했습니다. 예언자는 앞날을 맞추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이 예언자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사람이 예언자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간절한 청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제게 보여주십시오.’(출33:1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청을 거절하셨습니다. ‘너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한다.’(출33:20) ‘너는 내 등은 볼 수 있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볼 수 없다.’(출33:23) 모세는 위대한 계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11-24) 말씀처럼 새로운 모세가 필요합니다. 모세보다 한 차원 높은 예언자가 필요합니다. 말씀에 예언된 그 예언자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예수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나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나님을 알려 주셨다.’(요1:18) 예수님은 하나님의 품속에서 그분의 얼굴을 보고 그분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우리에게 알려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모습 그대로를 왜곡하지 않고 드러내신 것 이것이 ‘진리’입니다. 예수가 바로 진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면 실제 하시는 하나님 모습 그대로의 하나님이 드러나게 됩니다.

‘예수를 보는 사람은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요14:9) 예수 안에서 드러나신 하나님의 참된 모습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며, 자신을 내어 주시어 우리를 사망과 고통에서 건져내시는 은혜로우신 주님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자유케 됩니다. 평화가 임하고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참된 자유와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계속해서 우리 나름대로 조각하고 왜곡합니다. 그런 일그러진 모습에서 우리는 고통받게 됩니다.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한해 특별히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분의 모습을 바라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수요예배에 레위기 말씀에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잘 듣고 순종함으로 축복의 한 해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첫째, 우상 만들지 말고, 조각하지 말고, 세우지 말고, 절하지 말라 입니다.

 

칼빈의 말처럼 ‘우리는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입니다. 계속해서 왜곡된 하나님의 상을 만듭니다. 조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도 조각하면 안 됩니다. 생각으로 만들어낸 사람과 함께 대화하고 교제하면서 느끼는 것은 생각으로 조각한 사람과 실제의 사람은 천지 차이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조각하지 말고 참된 하나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합니다.

 

둘째, 그렇게 하기 위해서 참된 하나님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켜라. 안식일은 성소에서 지켜라 입니다. 하나님은 예배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계시, 현시입니다. 

 

이 두 가지, 우상 만들지 말고, 안식일, 즉 주일을 성전에서 지켜라. 이것을 지키면 주시는 큰 상이 있습니다. 철 따라 비를 주시며, 땅의 소출, 나무의 열매를 많게 하시며, 너무 소출이 많아 계속해서 거두게 하실 것이며, 배부르게 하시며, 안전하게 하실 것이다. 평화를 주실 것이며, 두 다리 쭉 뻗고 자게 하실 것이며, 보살펴 주시고 자손이 많게 할 것이다. 거둔 곡식이 너무 많아 곳간에 묵은 곡식을 퍼내 나누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함께 사시며 함께 거니실 것이다. 고통에서 건져주시며 메고 있는 멍에와 가름대를 부수어 버리시고 얼굴을 들고 다니게 하신다 했습니다.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이다. 이 축복이 있는 새해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섬기고, 주일을 성소에서 지킬 때 주시는 복입니다. 만일 이것을 지키지 않을 때 주시는 벌이 있어요. 갑작스런 재앙이 올 것이다. 폐병, 열병, 눈이 어둡게 되며, 기운이 쭉 빠질 것이다. 씨를 뿌려도 다른 사람이 먹을 것이며, 쫓는 사람은 없는데 쫓기며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될 것이다. 네가 자랑하는 힘을 꺾겠다. 하늘과 땅은 쇠와 놋쇠처럼 굳게 되어 힘써도 소출을 얻지 못하리라 나무의 열매도 없을 것이다. 짐승을 보내고 전쟁을 보내겠다. 먹거리가 끊어질 것이다. 먹어도 배고프고 마을이 황폐해질 것이다. 황폐해짐에 원수들도 놀랄 것이다. 마음은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되리라. 바람에 나뭇가지가 떨어지는데 칼이 떨어지듯 놀래 기겁하고 달아날 것이다. 아무도 뒤쫓지 않아도 도망 다니다 넘어진다. 아무도 뒤쫓아 오지 않는데 칼을 피해 비틀거릴 것이다. 죄 때문에 힘이 없어진다. 그러나 언제든 지은 죄를 깨닫고 허물을 고백하고 할례받지 못한 마음을 찢고 겸손해지면 내가 언약을 기억하겠다. 내가 버리지 않겠다. 미워하지도 멸망시키지도 않겠다. 나는 주다.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뭇 민족이 보는 앞에서 너희를 이끌어낸 주다. 나는 주다.

 

올 한해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알게 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진리란 예수 안에서 계속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참된 존재입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은혜 위에 은혜, 무진장한 은혜, 끝이 없는 다함이 없는 은혜의 보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그리스도 안에 넣어 두셨는데 어디에 가시려고 합니까? 예수께 나오세요. 무진장한 은혜의 곳간에 나아 때를 따라 주시는 모든 신령하고 충만한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진리 되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가시고, 주의 계명과 법도 따라 주일을 철저히 지키고 성소에서 예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준비하여 놓으신 모든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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