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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2020년 1월 12일 주일예배 설교_ 모든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2020-01-12 16:56:22
김민철
조회수   85

주일설교

 

모든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성  경: 마태복음 3:13-17

설교자: 원영만 목사

설교일: 2020. 1. 12

 

 

13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3:13-17

 

 

 

거룩한 주일 하나님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와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주현 후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의 말씀으로 『모든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대 광야에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라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모습도 특이했습니다.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석청(들꿀)을 먹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의 사람들, 그리고 요단강 부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세례자 요한에게 나아와 자기 죄를 자백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많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인들도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왔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나는 회개를 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능력이 더 많으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도 없다. 그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11) 또한 앞으로 오시는 분은 그의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을 깨끗이 할 것인데,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라(12)고 외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강으로 세례 요한을 찾아오셨습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유대 지방이 아닌 먼 곳 갈릴리 이방인의 땅에서 세례를 받으시러 오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왜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셨습니까?” 하고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시려는 예수님을 말렸습니다. ‘말렸다’는 말의 원어는 미완료 형태입니다.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린 것입니다. ‘안 됩니다’ 제가 ‘당신’에게 세례를 줄 수는 없습니다.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때에야 요한이 허락하고 예수님께 세례를 베풉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다’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요한이 왜 거절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입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받는 세례입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는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에게는 허물과 잘못이 없으십니다. 회개할 것도 뉘우칠 것도 없습니다. 바로 잡을 것도 없습니다. 주님께 요한의 세례는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의를 이루다’ 여기에서 ‘의’란 무슨 뜻일까요? 성경의 단어는 아는 것 같다가도 조금만 깊이 생각해도 그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에서 이 ‘의’라고 하는 단어는 여러 번에 걸쳐 반복해서 나옵니다. 마태복음에서도 ‘의’는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이 ‘의’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의’라고 하는 단어가 워낙 다양한 곳에 쓰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특별히 마태복음에서 ‘의’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의’는 ‘디카이오수네(헬, δίκαίοσυνη)’입니다. 이 뜻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입니다. 헬라어에서 관용적으로 ‘신적인 요구’, 즉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하나님의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모든 의를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의’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의’가 무엇인가? 질문에 ‘의’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야!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의’는 제자훈련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마5:20,6:1,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의 의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마5:6) ‘의’를 위하여 박해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마5:10)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그것이 ‘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실망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께 간절히 올리신 기도와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려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가지고 온 예언의 말씀인 이사야 42장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 주가 ‘의’를 이루려고 너를 불렀다.’ 영어 성경에는 ‘의를 이루려고’를 ‘in salvation’(인 살베이션)으로 번역합니다.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의’는 하나님의 뜻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뜻은 바로 ‘구원’이라는 의미이지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며 모든 이가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했습니다.(딤전2:4)

 

수요일에 민수기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광야 시절의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의 의미로 ‘회막’이라고도 하고,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곳의 의미로 ‘성막’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성막의 다른 이름은 ‘증거의 장막’입니다. 왜 ‘증거의 장막’이라고 부르냐 하면, 증거의 장막 안에는 ‘증거궤’가 있습니다. ‘증거궤’ 안에는 ‘증거판’이 있습니다. 언약궤라고도 불리는 증거판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직접 쓰신 돌판 두 개입니다. 돌판 두 개에 앞뒤로 하나님께서 손수 쓰셨고 모세는 그것을 받아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이 판 이름이 증거판입니다. 

 

그렇다면 ‘증거’란 무슨 뜻일까요? 법정에서 증언한다는 의미인데 무엇을 증언, 증거한다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를 직접 알려주셨습니다. 민수기 17장 4절에 나에 대해서 알려주는 증거궤라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나 자신을 알리는 곳인 그 증거궤”(민17:4) 증거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기 자신을 알려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증거판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판입니다. 증거판은 이렇게 시작합니다.(출20:1-17)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결국 십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증거판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모습은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나는 너를 구원하는 주다’ 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아라. 나는 오직 구원하는 주다. 나에게 이것저것 붙이지 말라. ‘나는 구원하는 주다.’ 다른 이에게 이 이름을 붙이지 말라.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는 나의 영광은 다른 이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사42) 내가 ‘구원’이다. 오직 나만이 ‘구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원은 오직 주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곳으로부터 단번에, 또한 영원히 건져 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주님뿐이십니다. 우리 자신, 우리 가정, 우리 자녀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주님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모든 절망의 장소에서 이끌어 올리시는 분입니다. 그분께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마태는 ‘의’를 구속사의 관점에서 사용합니다. 예수님의 세례받으심이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시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죄가 없으신 주님께서 죄의 자리로 들어가심은 죄 가운데 있는 이들을 이끌어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은 힘과 전쟁으로 화려하게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기대와는 달리 고난 당하시는 연약하시고 볼품없으신 종의 모습으로 인간의 가장 밑바닥까지 낮아지시면서 고난 당하심과 죽음으로 새 일을 이루어가시는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양어깨에 세상의 모든 죄, 여러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요단강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분은 참된 의미의 ‘요나’가 되셨습니다.(욘1:12)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시오.’ 주님께서 바다에 던져지셨습니다. 세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내가 받은 세례를 너희도 받을 수 있겠느냐(막10:38)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눅12:50) 세례는 죽음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9-407)은 ‘물속에 잠겼다 거기에서 다시 솟아오르셨다는 것은 음부에 내려가셨다 다시 부활하셨다는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동방교회의 성화에서 늘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받으실 때 들어가셨던 요단강 물을 ‘물 무덤’ 물로 만들어진 무덤으로 그립니다. 예수님은 단지 구경하시기 위해 그곳에 내려가신 것이 아닙니다. 함께 고난을 겪으시고, 대신 고난을 당하신 후에 깊은 수렁 속에서 짓누르고 있는 문을 부수어 버리셨습니다. “네가 그들을 철퇴로 부수며, 질그릇 부수듯이 부술 것이다.”(시2:9) 그리고 그 길을 활짝 열어젖히셨습니다. 악한 자의 소굴에 들어가셔서 악한 자, 그 힘센 자를 싸워 이기시고 결박하셨습니다. 그 힘센 자를 우리 힘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더 힘이 세셔서 그 악한 자의 힘을 꺾어 버리시고 그를 굴복시키시고 무릎을 꿇게 하시고 묶어버리셨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즉 세상 죄를 없애버리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요1:29)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낮고 낮은 데로 내려가셔서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함께 당하시고 그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들과 완전히 하나가 되신 후에 그분께서는 그곳에서 다시 올라오셨습니다. 곧바로 다시 올라오셨습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은 온통 죽음의 지배에서 놓여나는 것, 자유롭게 해방되어 탈출하는 것, 약속된 땅을 향하여 자유롭게 순례의 길을 떠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억누르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속하심으로 자유케 하시는 유월절의 어린 양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세례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해방을 얻었습니다. 그가 모든 질고를 짊어지심으로 우리는 치유되었고 모든 병에서 나음을 입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속하신 주님을 언제나 붙들어야 합니다.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우리가 살아야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구원이십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유일한 구원의 길을 무시하는 것은 미련한 것이요, 어리석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라고 했습니다.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늘이 찢어졌다는 마가복음 표현도 있습니다.(막1:10)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였습니다. 비둘기는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 할 때에 어미 새가 새끼를 품고 있는 형상입니다. 그곳에서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새로운 창조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이 다시 열렸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각 사람 위에 임하셨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는 것은 이 땅에 오신 예수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회개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합니다. 무엇을 믿느냐 하면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그를 의지해야 합니다. 방황하던 어리석음을 돌이켜 회개하고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을 믿을 때 이 구원이 임합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 중심에 언제나 예수께서 계십니다.

 

열린 하늘에서 하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아 사명을 완수할 종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시42:1) 뭇 민족에게 구원을 가져다줄 ‘종’의 사명에 온전히 순종하고, 죽음 당하심으로 모든 인류의 허물과 죄를 씻어줄(사53) 외아들을 하나님께서는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마3:17)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 즉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 그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셨습니다. 고난과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룩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서 전체의 주제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요, 예수님은 그 뜻을 이루셨습니다. 모든 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네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이끌어내고, 어두운 영창에 갇힌 이를 풀어줄 것이다.’ ‘나는 주다. 이것이 나의 이름이다.’ ‘나는 내가 받을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고, 내가 받을 찬양을 우상들에 양보하지 않는다.’(사42:7-8)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이 그분의 ‘의’는 ‘완전한 의’가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증거의 장막’ 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드러나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믿으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세요. 두려워 말고 그분의 구원하심을 믿으세요. 주님의 방법은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계획과는 다릅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니 눈앞에 보이는 것 때문에 흔들리지 마세요. 두려워 말고 구원의 주님을 붙들고 그분의 이름을 소리높여 찬양하세요. 그분의 이름은 ‘구원’입니다. 예수, ‘주께서 구원하신다.’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시는 장면을 묵상해 보세요. 그분과 함께 물에 들어가고 그분과 함께 그 물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이시지요. 두려움과 죽음의 장소, 깊은 물의 바닥 같다 해도 두려워 마십시오. 함께 계신 주님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그곳에서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닫힌 천장을 철퇴로 부술 것입니다. 우리를 붙들고 있는 모든 힘으로부터 우리를 끊어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끌어내실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그곳에서 해방될 때 하늘이 열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면 모든 것이 새롭게 열립니다.

 

새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 우리에게 다가와 외치고 속삭이는 어떤 속삭임에도 마음을 주지 마십시오. 거짓입니다. 허상입니다. 우상입니다. ‘모든 의’를 이루시는 분, 즉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주신 주님을 날마다 붙잡고 우리도 그분처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그분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제자입니다. 그때 이 모든 것, 즉 우리에게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모든 의를 이루어가는 교회’,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데 마음을 같이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자신의 뜻을 관철 시키려는 사람들이 이 땅에는 너무 많습니다. 늘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 뜻을 이루어가는 ‘의로운 사람’, ‘의로운 일꾼’, ‘의로운 가정’, ‘의로운 백성’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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