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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2020년 3월 8일 주일설교_ 주께로 한 걸음씩
2020-03-08 12:50:56
전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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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주께로 한 걸음씩

 

 

성 경: 요한복음 3:1-17

설교자: 원영만 목사

설교일: 2020. 3. 8

 

 

 

1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17

 

 

 

거룩한 주일 하나님 전에 나와서 예배하는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특별히 오랜만에 방문하신 분들이나, 각 처소에서 방송을 보면서 예배하는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강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사순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의 말씀으로 『주께로 한 걸음씩』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의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우리 주 예수님께 있습니다. 한결같습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이 땅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말씀이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때에 그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습니다. 그분은 쏟아지는 향기름입니다. 충만하신 그분으로부터 우리는 은혜 위에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시며, 또한 진리이십니다. 즉 그분의 말씀은 진리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하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독생 하신 아드님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들은 하늘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또한 어떤 대화들이 오고 갔는지를 알게 됩니다. 충만하신 예수님은 하늘의 음성을 왜곡하지 않으시고, 축소하거나 은폐하거나 덧붙이지 않으시고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말씀이 진리 되신다할 때 진리를 아주 쉽게 설명하면 면사포를 벗기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윤곽만 보이던 것들이 면사포가 벗겨질 때 매우 분명하고 정확하게, 있는 모습 그대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늘의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시는 분이 바로 진리 되시는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보내신 아드님 되시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전해 주시는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 장면입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을 청결하게 정화하십니다. 성전에 있던 온갖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정리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예수님 자신이 참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에서 많은 환자들을 고치시며 이적들도 행하셨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사람 중에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 일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던 어느 날 밤, 한 사람이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어둠’, 낮과 밤을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마치 그림을 그리듯 표현하고 있는 요한복음의 저자는, 밤 즉 어둠에서, 빛 되신 예수님께로 나오고 있는 장면은 마치 우리에게 그림으로 설명하듯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둠과 빛이 매우 선명하게 구분되는 그 지점에서 니고데모는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빛 그 자체이십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너는 누구냐?’ 물었을 때에 세례 요한은 자신을 빛에 대해서 증언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참 빛은 오직 예수님뿐이라고 했습니다. 빛 되신 예수께서 어둠 가운데로 내려오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빛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 빛으로 나아오지 않은 것입니다. 빛으로 나아오는 것은 용기입니다.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말처럼 믿음은 용기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발을 떼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용기를 내어 빛 가운데로 발을 딛는 것이 용기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빛에 매우 가까이 나온 사람이 바로 니고데모입니다. 그러나 그는 빛 가까이 있기는 했지만, 어둠에서 빛으로 발걸음을 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빛에 매우 가까이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으며, 유대인의 한 지도자였습니다. 주님께 나아온 그는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입니다. 제가 압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시지 않았다면 당신이 행하시는 그러한 일들은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신 다음에 바로 내가 하늘로부터 온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너는거듭나야 한다. 즉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헬라어 아노덴(anôthen), ‘다시라는 말은 위로부터라는 말로도 해석되는 단어입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마귀도 그건 알고 있다. ‘태어나다는 말은 영어로는 벌쓰(Birth)입니다. 태어나는 것은 임신, 즉 아이를 갖는 것과는 다릅니다. 엄마 뱃속에 있던 아이가 어느 날 응애하고 세상에 나오는 것 이것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영어의 Birth 어원은 ‘Bear’와 관련되어 있고 Bear는 캐리(carry)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나오는 것입니다. 매우 안타깝게도 엄마 뱃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지요. 그들은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엄마 뱃속에 아이가 세상과 매우 가까이 있습니다. 엄마 배의 살은 매우 얇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매우 의미 깊은 상징입니다.

 

가끔 막달이 거의 되어서 문제가 되어 유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태어나지 못한 영혼들이 참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어날 때가 다 되었는데, 아니 지났는데 나오지 못한 이들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야 너는 태어나야 한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내가 이미 이 땅에 하늘나라를 가지고 왔다. 하늘나라는 매우 가까이 있다. 그러나 다시 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나라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들어갈 수도 없다.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지 않는 이들이여, 오직 눈에 보이는 세상의 나라만 보고 있다면 니고데모에게 주신 이 말씀은 바로 나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다시 나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안 보이는 것은 다시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없다.

 

니고데모야 너는 성경도 많이 알고, 나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구나. 그러나 그걸로는 안 된다. 태어나야 한다. 이 시대의 많은 니고데모를 향해 주님께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정말 요한복음의 저자는 그 시대의 아직 나지 못한, 망설이고 있는, 또는 자신을 거듭났다고 착각하고 있는 많은 니고데모를 향해서 말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너는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엄마 뱃속에서 다 컸는데 나오지 못하면 그건 너무나 가슴 아픈 것이다. 니고데모야 너는 나와야 한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다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야. 망설이지 말고 태어 나와야 한다 하는 말씀입니다.

 

니고데모는 선생님 제가 다 자랐는데 어떻게 다시 태어나지요?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올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예수님! 그 이야기는 무슨 뜻입니까?”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너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는 그 자리, 태어나는 그곳, 그 포인트에는 매우 분명하게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이요, 다른 하나는 성령입니다. 산모의 해산하는 수고로 아이가 이 땅에 태어나듯,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는 것,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생’, ‘거듭남’, ‘중생’, ‘다시 남등으로 표현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까?’ 니고데모는 다시 주님께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면서 아직까지 이것도 알지 못하느냐?’ 바람은 임의로 분다. 바람의 소리를 들을 수는 있어도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또한 어디로 가는지 너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성령으로 나는 것은 이와 같다 하셨습니다. 성령과 바람은 프뉴마(), 루하흐() 같은 단어입니다. 이중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억해라 중요한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 외에는 하늘로 올라가는 자는 없다. 모세가 놋뱀을 높이 들었듯, 인자도 높이 들려야 한다. 인자가 들릴 때 사람들을 이끌어 즉 나게(Bear) 태어나게 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예수님은 살아 있는 물’, 생수(living water)이십니다. 요한복음 3장의 성령으로 거듭나다를 묵상하면서 요한복음 앞부분을 다시 한번 읽어 보았습니다. 거기에서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온통 이야기입니다. 성서학자 조셉프 라칭거(Joseph Ratzinger)는 요한복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관통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물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물을 채워라 그리고 가져다 주어라하셨습니다. 물을 채웠던 항아리는 정결, 즉 깨끗하게 하는 예식을 위한 여섯 항아리였습니다.

 

니고데모와 대화에서는 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말씀하셨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시는 길에서 만난 수가성 여인과의 대화에서도 야곱의 우물가에서 바로 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야곱이 주는 물을 마신 이는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신 사람은 다시 목마르지 않는다. 수가성의 여인이 선생님 그 물을 내게 주셔서 다시는 여기에 물을 길으러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알고 내가 누구인지 바로 알았더라면 너는 내게 구하였을 것이요 내가 네게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로 내가 그다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베데스다 38년 된 병자를 고친 사건에서도 이 나옵니다.

 

한 소경에게 침으로 흙을 개어 눈에 붙여주시고는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그는 말씀대로 실로암에 가서 씻었고, 보게 되었습니다. 실로암은 보내심을 받은 자, 즉 예수님입니다. 실로암의 물은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깨끗이 씻겨주셔서 보게 해주시는 이라는 뜻입니다.

 

명절 끝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다했습니다. 소아시아의 초대교부들은 처음부터 그 배를 예수님의 배로 해석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즉 성경이 말씀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저자와의 전통과도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주님의 배에서 생수의 물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물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야에 물을 담으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십니다. 그리고 또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한 병사가 창으로 주님의 배를 깊숙이 찌릅니다. 그때 주님의 배에서 가 쏟아져 나옵니다.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그리고 입니다.

 

우리교회 십자가는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은퇴하신 원로목사님께서 만드신 십자가입니다. ‘섬김의 십자가입니다. 처음 이 십자가를 보았을 때 그 의미를 여쭈어보았더니 십자가 위에서 흘러내리는 예수님의 을 상징한다고 하셨습니다. 파란색은 ’, 치유요 빨간색은 ’, 대속입니다.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계속 이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의미가 참 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십자가에 힘이 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도,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옵니다. 요한복음에는 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물은 깨끗케 하는 물, 씻어주어 보게 하는 물, 영혼의 갈함을 말끔히 씻겨주는 생명의 살아 있는 물입니다. 그 생명의 물로 씻음 받은 이가 다시 나는(rebirth), 다시 태어나는 거듭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거듭남이란 위로부터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니고데모는 계속해서 ‘can, cannot, do’단어를 사용합니다.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무엇을 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또한 그는 엄마 뱃속, 즉 계속해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숨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모세가 놋뱀을 장대에 높이 달았듯 인자도 들려야 한다. 이것이 하늘의 계획입니다.

 

구원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이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십자가 밑으로 나아오세요. 그곳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주님의 배에서 쏟아지는 물과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밑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주님의 물과 피를 폭포수를 맞듯 맞아야 합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는 자만이 그곳으로 나아갑니다. 십자가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로 치유와 생명을 주는 물입니다. 에스겔 47장에서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흐릅니다. 자를 가지고 재면서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옵니다. 양쪽에 나무가 벌써 많아졌습니다. 그 물은 죽음의 바다로 들어가 그 물을 살립니다. 깨끗하게 고칩니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곳에 모든 것은 살아납니다. 강 양쪽에 온갖 종류의 나무가 과실을 맺습니다. 끊이지 않습니다. 그 잎은 시들지도 않습니다. 12절에 나무는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은 그 물이 성소에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 과일은 사람들이 먹고 그 잎은 약재로 씁니다. 계시록 22장에 빛나는 생명수 강이 나옵니다. 그 강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종류의 열매 맺는 생명 나무가 있습니다. 달마다 열매를 내고 그 나뭇잎은 민족들을 치료하는 데 쓰입니다. 주님의 강은 생명과 치료의 강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은 그분의 물과 성령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러한 이들은 시편 1편의 말씀처럼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입니다. 철 따라 열매 맺고 잎이 시들지 않고 하는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의 생수로 살아야 합니다. 단지 아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이 방법밖에 없다고 그 자리에 나아가 엎드리는 자에게 쏟아지는 것이 주님의 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거듭남도 없습니다. 성경은 물과 피와 성령, 이 세 가지는 하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겸손은 자신의 죄악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치면 안 됩니다. 기독교의 겸손은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엎드리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의 죄를 씻으신다 고백하며 십자가 앞에 엎드려지는 것입니다.

 

물은 아래로 흐릅니다.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산등성 위에 흐르는 게 아닙니다. 골짜기에서 흐릅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천로역정 강화에서 말씀하시는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입니다. 밑으로 내려갈 때 그곳에 이 있습니다.

 

빛 가운데 나오지 못한 이유에 대해 빛 가운데로 나올 때에 자신의 허물과 죄가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빛을 싫어하고 어둠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시 어둠 속으로 더 깊이 숨어듭니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따르는 이는 빛으로 나아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21절에 믿는 자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좀 어렵지요. 영어로는 ‘his acts are performed through God’입니다. 그의 행위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완성되었다. 그것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이루어졌다. performedcarry out인데 완전히 다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태어남 Birth, Bear, Carry가 서로 연관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태어날 때 아이도 힘들지만 산모가 힘을 내어서 아이가 이 세상에 나오는 것처럼 거듭나고 보면 사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수고와 고통과 힘주심으로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죄가 밝히 드러나는 그 일에도 하나님의 역사이고 깨끗하게 하심도 하나님의 수고와 고통으로 이루신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로 나올 때에 자신의 연약함과 죄와 허물이 다 드러나는 것 같으나, 또한 거기에는 십자가에서 흘러 내려오는 저 생수의 강이 모든 죄와 허물을 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거기에는 나의 행위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일, 하나님이 행하신 일, 예수님 안에서 이루신 놀라운 대속의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어떤 핑계도 안 됩니다.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물로 씻음 받은 곳에 언제나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숨을 내쉬시면서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받으라이 말씀이 처음 하신 말씀입니다. 전에 성령에 대해 말씀하시긴 했지만,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은 없었습니다. 이제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그 생명의 물에 씻음 받은 이들은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이 뜻입니다.

 

온 땅이 코로나로 인해 두려워하며 떨고 있습니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쓰고 다니는 마스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상징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시골에서 늘 상엿소리를 들었습니다. 상여를 보관하던 창고는 늘 무서움의 장소였습니다. 늘 죽음이 가까이 있었습니다. 어린이건, 노인이건 늘 초상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장례가 나면 며칠을 베옷을 입은 사람을 보고 영정을 보았습니다. 이어령 씨의 말대로 이제 이 사회에 죽음이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청년 때까지 초상집에 한 번도 못 가본 사람들도 꽤 됩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죽음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살고 죽는 게아니고 죽고 사는 것입니다. 언제나 죽음이 먼저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우리 민족에게는 죽음이 먼저였습니다. 죽음을 깨닫는 곳에 진정한 삶도 있습니다. 언제나 죽음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매우 가까이 있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죽음에 삼킨 바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유일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이미 빛으로 생명의 물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습니다.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빛과 어둠 가운데 머뭇거리지 말고 한 걸음, 딱 한 걸음씩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한 걸음이 그렇게 힘듭니다. 그러나 힘을 내어서 주께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꼭 예배당에 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늘 기도하던 다니엘처럼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주님께 한 걸음씩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532장입니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주께 나오라

주님께 아뢰이면 너 복을 받으리라

값없이 주는 은혜 너 거절 말아라

 

(2)

주께로 한 걸음씩 너 빨리 나가라

주께서 너를 맞아 네 죄를 사하리

 

(3)

주께로 한 걸음씩 주 은혜받으라

기회를 잃지 말고 네 마음 정하라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주께 나오라

주님께 아뢰이면 너 복을 받으리라

값없이 주는 은혜 너 거절 말아라

 

니고데모야 이제 거기 어둠에 있지 말고 네게 오너라주님께서 그분의 팔을 벌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물론 이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주님께로 한 걸음씩 나갈 때 주님이 행하신 일들이 얼마나 놀라운지 바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생 가운데 일하시는 일들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여 낙망하지 말고 한 걸음씩 주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한 걸음씩 나아가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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