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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2020년 5월 31일 주일설교_드디어 성령이 임하시다
2020-05-31 13:24:41
전미숙
조회수   36

주일설교

 

드디어 성령이 임하시다

 

 

성 경: 요한복음 20:19-23, 7:37-39

설교자: 원영만 목사

설교일: 2020. 5. 31

 

 

 

19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37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한복음 20:19-23, 7:37-39

 

 

 

  거룩한 주일 하나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 오랜만에 방문하신 분들이나, 처음 나오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크신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셨습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이들에게 놀라운 새로운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자신들도 놀랐습니다. 그들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놀랐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일들이 시작된 날입니다. 읽어주신 본문의 말씀으로 『드디어 성령이 임하시다』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심은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을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죄 때문이셨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죄인을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죄 사함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살길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선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의 공로로 해결되었습니다. 이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닌 주님의 공로로 죄 사함의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의 오랜 계획이 드디어 성취되었습니다.

 

  죄 사함이 있는 곳에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하늘과 땅이 막혀있었던 것은 인간의 죄악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와 하늘의 거룩은 함께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 아니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였고”(59:12) 했습니다. 아주 두터운 장막으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장막을 찢어 놓으셨습니다. 하늘의 문을 열어젖히셨습니다. 그 열려진 하늘의 문을 통해서 생명의 영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를 아주 급하고 강한 바람으로 묘사했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과 함께 활활 타오르는 사랑의 불, 하나님의 성령이 각사람 위에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어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새 마음을 지으셨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이 그들 안에 형성되었습니다. 성령을 보내시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셨듯(104:30)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변화(change)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변화입니다. 그전에는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없었던 일입니다. 웅크려있던 그들의 마음은 시원하게 확 트였습니다. 두려워하며 주저앉아 있었던 그들은 이제 일어서서 밖으로 나아가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성령은 입니다. 타오르는 불입니다. 일어나게 하고 활활 타오르게 하는 불입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불입니다. 성경은 성령을 불로 묘사합니다. 불이 그들 마음에 임했습니다.

 

  백여 년 전 영국의 감리교 위대한 지도자요 대학교 학장이었던 사무엘 채드윅(Samuel Chadwick, 1860-1932)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성령에 의해만 성취된다. 진리를 깨닫게 하고 확신을 얻게 하고 성화와 구원을 얻게 함은 오직 성령으로야 가능하다. 인간의 철학은 실패한다. 성령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우리가 부족하고 실수가 많은 것은 성령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 필요하다. 다른 것이 아니다. 불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입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입니다. 성령의 불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불이 임해야 합니다. 마음에 임해야 합니다.

 

  “교회의 자원은 성령이시다. 성령께서 모든 것을 공급하여 주신다. 성령은 위로하시는 분 그 이상이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지 못한 것까지 말씀하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진리의 영이요, 증거의 영이요, 확증의 영이요, 능력의 영이요, 성결의 영이요, 빛의 영이요, 양자 삼으시는 영이요, 도우시는 영이요, 자유케 하시는 영이요, 온유케 하시는 영이요, 건전한 정신을 갖게 하시는 영이요, 은혜의 영이요, 영광의 영이요, 예언의 영이시다. 교회가 추구하고 구해야 할 것은 오직 성령이다. 성령만이 교회의 자원이다. 이 세상 자원은 헛되다.”

 

  채드윅은 성령 없이는 기독교에 소망이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 하는 곳에 세상의 지혜와 세상의 자원이 대신하여 차지하고 있을 때 그곳에는 반드시 혼동과 무능력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성령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요, 약속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는 불신앙입니다. 주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도 살 수 있다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교만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니 무너집니다. 같은 곳에서 매번 무너집니다. 무너진 곳에서 또 무너집니다. 성령의 충만이 필요합니다. 성령으로야 됩니다.

 

  성령의 일하심으로 생겨난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성령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성령은 호흡이요, 숨입니다. 숨 없으면 생명 없는 것입니다. 성령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성령 없는 성도는 죽은 성도입니다. 살았다고 하나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살아있다 하나 실상은 죽은 교회입니다.(3:1) 성령의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그곳이 교회입니다.(This is a church on Fire)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는 교회입니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입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성령입니다. 바로 성령의 불입니다. 이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순절 성령의 임함을 보고 놀라고 있는 이들에게 베드로 사도께서 설교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조롱하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요엘을 통해 주신 말씀대로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연기로다”(2:16-19) 했습니다.

 

  오순절에 각 사람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진심으로 믿고 구하며 기다리던 이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도들의 육체가 성전이 되었습니다. ‘피와 불과 연기는 성전에 있는 것들입니다. 속죄의 가 있고, 제단에 타오르는 이 있고, 하늘로 올라가는 기도의 연기, 하나님의 임재의 연기(쉐키나, שכינה)가 있습니다. 이제 각 사람이 성전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가득 임하셨습니다. 각 사람을 성전 삼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성령을 구하십시오. 성령 충만을 받으십시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성전 되어 각 사람 각 사람마다 연기의 증거들이 충만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죄 사함의 은혜, 주께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가 잊혀지지 않고 계속해서 찬송과 감사 가운데 살아있어야 합니다. 타오르는 성령의 불길이 있게 하십시오. 제단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불길이 사그라드는 이들이 있다면 정신을 차리고 다시 불을 붙여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성도입니다.

 

  가짜 성도가 너무 많아서 너도 속고 나도 속고 모두 속는 시대입니다. 말씀을 봐야 합니다. 말씀이 진리입니다. 말씀으로 구별됩니다.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17:19) 생각대로 따라가면 안 됩니다.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옆 사람 따라 살면, 세상의 길,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 충만함으로 ’, ‘’, ‘연기의 증거가 가득한 이가 참 기독인이라 말씀합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참 성도의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에 힘없음은 성령 충만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어떤 주위 환경도 문제가 안 됩니다. 이백의 시 산중문답마지막 구절처럼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입니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살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됩니다. 그렇다면 프뉴마, 바람 되시는 성령께서는 어디에서부터 불어오시는 것일까요? 기억하십시오. 잊으면 안 됩니다. 성령은 유일한 곳, 오직 한 곳에서부터 불어옵니다. 그 지점 외에 다른 곳에서 오시지 않습니다. 오직 한 곳입니다.

 

  오늘 읽어주신 본문의 말씀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바로 그날 저녁에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요한복음은 성령의 임하심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와는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다 신학적인 표현이요, 보다 상징을 담고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함께 모여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영광을(glorified) 받으신 몸입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모든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그들 한가운데 서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느니라”(18:20)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저는 말씀을 믿습니다. 그리고 늘 체험적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에서는 매일 저녁마다 8시에서 10시까지 기도회로 모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기도하는 곳에 늘 계신다고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으십시오. 혼자 기도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축복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던 곳에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심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주님께서 계십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무리와도 함께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모이기에 힘쓰라(10:25) 했습니다.

 

  담임자가 하는 일은 주께서 맡기신 성도들이 주님 전에 나와 기도하게 하는 것이요,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짐 심발라) 믿음 생활은 기도 생활입니다. 교회는(성전) ‘만민이 기도하는 집’(11:17)입니다. 기도하는 곳에, 정확히 말하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 구원이 임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 성령이 임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사 평강이 있을지어다’(20:19) 하셨습니다. 그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신 다음에 다시 평강이 있을지어다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듯 내가 너희를 보낸다 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22) 하셨습니다.

 

  성령은 다른 곳에서 오지 않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으로부터 옵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으로부터 우리에게 오십니다. 다른 곳에서 성령을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입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손과 옆구리에 상처를 입으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해결하신 그분으로부터 옵니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그분을 믿는 이들에게 그분으로부터 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21,10:13) 말씀의 뜻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름은 다른 곳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에노스’(אֱנוֹשׁ)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4:26) 했습니다. ‘에노스죽을 수밖에 없는, 깨지기 쉬운, 연약한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임을,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주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름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는 어떠한 구원도 얻을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밖에 도움 없음을 깨닫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으리라”(10:13) 그분만을 바라보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부르다는 말은 부르짖다는 뜻입니다.(13:45) 문둥병자가 부정하다’, ‘부정하다외칠 때 부르다단어를 썼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곳, 바로 그곳으로부터 성령이 불어옵니다.

 

  십자가 달리시어 죽으실 때 휘장을 찢어 열어놓으신 그 문으로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주님께서 숨을 불어 내쉬셨을 때 급하고 강한 바람이 이 땅으로 불어왔습니다. 그 바람은 하늘의 불을 담아 왔습니다. 사도행전은 각 사람에게 임하시는 모습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기도의 향을 하늘 제단에 올린 천사가 그 향로에 제단의 불을 가득 채워 땅에 던질 때 천둥, 요란한 소리, 번개와 지진이 일어났다 했습니다.(8:3-5) 성령이 오실 때 바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성령을 보내주신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내게로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오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예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7:38-39)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그들에게 아직 계시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예수께로부터 오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생수가 터진다고 했습니다. ‘신령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고전10:4) 성령이 오시는 곳은 매우 정확합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예수를 믿고 바랄 때 그곳에서 생수가 터집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도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예수님이 들리시는 곳, 그분을 믿는 곳이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3:8-15) 그래서 예수님은 내게로 오라’(7:38) 하셨습니다. 예수께로부터 생수가 흘러나오고, 성령이 오십니다. 예수님께 영생의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John Wesley) 목사님의 회심일은 1738524일 수요일입니다. 성령강림절을 지나고 바로 그다음 수요일 저녁입니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한 기도회에 참석하셨습니다. 한 형제가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는데, 그는 계속해서 변화’(change)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속에서 일으키시는 변화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해서, 마음에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일 하심에 대해 들을 때 이상스럽게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스도가 믿어졌습니다.

 

  유일한 구원의 길 되신 그리스도만 보였습니다. 그가 모든 죄를 멀리 옮기셨고, 자신의 모든 것들도 다 옮겨 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신을 해방케 하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유혹이 계속 찾아왔지만 큰 소리를 외칠 때 모두 떠나갔습니다. 계속해서 유혹이 찾아오고 또 찾아왔습니다. 그는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도움을 보내주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그의 마음과 그의 입에는 오직 예수, 나의 주님만’(Jesus, Master) 있었습니다. 시험이 계속 찾아왔지만 그는 주님께 시선을 고정했고,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힘은 그곳으로부터(주님을 바라보는 것) 생겨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 신앙’(信仰)입니다. 그 신앙에 성령이 임하고 새 힘이 생깁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곳에 주님께서는 그분의 영을 보내주십니다.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38) 했습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기뻐하지 아니하리라”(38) 하셨습니다. 뒤로 물러가면 침륜에 빠집니다.(39) 오직 영혼을 구원함은 믿음입니다.

 

  ‘불신앙이 죄임을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16:8-11) ‘엘렝코’(ελεγχω)는 폭로하다는 의미입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는 믿지 아니함이요했습니다. ‘는 무엇일까요? 의는 죄의 반대입니다. ‘가 불신앙이면, ‘는 신앙입니다. ‘에 대해서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눈에 안 보입니다. 안 보이는 그분과 연결됨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주님과 연결되어 하늘의 모든 것을 가져오는 통로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루터는 믿음이 라고 했습니다. ‘는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 했습니다.

 

  루터는 불신앙이 뱀의 머리요, 옛 뱀의 머리라고 했습니다. 불신앙은 죄의 뿌리요, 수액이요, 동력이라 했습니다. 불신앙으로부터 모든 죄가 흘러나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뱀의 머리로 부수셨습니다. 불신앙을 파하셨습니다. ‘불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신앙이 죄인지 모르고 삽니다. 누가복음 1727-30절 노아 때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하다 멸망 당했습니다. (소돔 고모라)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짖고하다 심판당했습니다. 마지막 때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잊고 삽니다. 주님을 무시하고 삽니다. 함께하시며, 인도하시고 주관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신학적 용어로 실존적 무신론입니다. 죄는 하마르티아주님을 놓치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힘은 주님을 바라보는 곳에서 옵니다.

 

  루터는 로마서 서문에서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 믿음 안에서(in), 믿음과 더불어(with), 믿음을 통해서(through)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믿음만이 우리를 의롭게 하며 믿음만이 율법을 성취한다(fulfil) 했습니다. ‘믿음만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에게 성령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루터)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분은 성령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납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믿고 기다릴 때 성령 충만함을 받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믿음 안에 거하십시오. 불신앙은 죄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주님을 믿고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이 아니면 신앙생활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모든 교우들도 성령을 받는 축복의 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대한수도원 원장이셨던 전진 원장은 그의 중생한 날(1946. 3. 11, 원산중앙교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냉각되었던 내 심령에 불길이 타올랐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견딜 수 없었다. 일백 독 넘게 성경을 읽었지만, 그날 이후 성경 말씀은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 되었다. 내 속에서 말씀이 살아 꿈틀거렸다. 하나님의 사랑의 불은 타올랐고 나는 뜨거웠다. 속울음이 끊임없이 터졌다. 하루 전의 울음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전의 울음은 막막함과 한탄, 설움, 분노로 얼룩진 것이었다면, 그날의 울음은 운무 중에 갇혀있던 나의 주위 환경이 황홀 찬란하게 되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체험이요, 은혜 내려주심에 무한 감사 눈물이었다. 자신 없음, 현실도피로 기웃거렸던 늘 머리 숙이고 살았던 내 인생이었다. 그 시간 이후 정반대가 되었다. 환난, 궁핍, 박해가 닥치더라도 능히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 실질적인 능력을 받은 듯했다. 대반전이 일어났다.

 

  존 웨슬리의 1738524일 회심의 체험처럼 나 역시 1946311일 저녁의 회심, 거듭남의 사건은 중대한 체험이요 변화의 사건이었다. 나 자신만의 영혼구원, 내 가족만 극성스럽게 돌보던 유아적인 틀에서 벗어났고, 나는 못살게 굴고 비난하던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변화시켜 주셨다. 기도의 중요성을 거듭 확인하게 되었다. 기도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가장 중요한 수단임을 분명하게 확신하게 되었다. 만사와 만물이 새롭게 보였다. 낙망 실패, 좌절의 골짜기에서 빠져나와 강한 신념과 새로운 소망을 얻었다. 복음 들고 세상을 향해 나가기로 결단했다. 기도의 불, 제단의 불을 다시는 꺼트리지 않으며 살아가리라 결단했다.“

 

  전진 원장이 중생을 체험하고 불렀던 노래가 성령이 오시었네입니다. 그해 정월 초하루 원산중앙교회에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던 유재헌 목사가 만든 노래였습니다. 성령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령이 오시었네

 

  1. 문을닫고 공--중에 넋을잃--제자들

      주님찾아 오시어서 새기운을주셨네

 

  2. 오순절다락--에서 열심기--함으로

      크고급한 바람중에 불꽃같이오셨네

 

  3. 식어버린이--령에 불길이--오르니

      견딜수가 없으므로 외치러나갑니다

 

  4. 하나님의그--랑이 끓고끓--오르니

      오천만의 동족위해 복음을전하리라

 

  5. 운무중에갇--있던 나의주--환경이

      황홀찬란 하게되니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6. 악한마귀짓--고서 죄악물--치리니

      무서운것 하나없고 기쁨만족뿐이라

 

  7. 환난궁핍박--들아 모두다--오너라

      나는너를 삼키어서 끝내-이기리라

 

  후렴: 성령이 오시었네 기뻐맞아드립시다

            성령이 오시었네 할렐루야참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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