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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2020년 1월 26일 주일설교_사람을 건져 올리는 어부
2020-01-26 16:32:01
전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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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사람을 건져 올리는 어부

 

 

성 경: 마태복음 4:12-23

설교자: 원영만 목사

설교일: 2020. 1. 26

 

 

12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나사렛을 떠나 스불론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16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18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바다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태복음 4:12-23

 

 

 

거룩한 주일 하나님 전에 나오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특별히 우리교회 오랜만에 방문하신 분들이나 처음 나오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강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의 말씀으로 『사람을 건져 올리는 어부』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잡히셨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물러나셨다가 그동안 자라시면서 쭉 살고 계셨던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이라는 동네로 이사를 가셔서 거기에서 사시게 됩니다. 가버나움은 원어로 가버나훔입니다. ‘가버’는 ‘마을’이라는 뜻이며, ‘나훔’은 ‘나훔’ 선지자를 뜻합니다. ‘나훔’의 뜻은 ‘위로’입니다. 그러니 가버나움은 ‘나훔 선지자의 마을’ 또는 ‘위로의 마을’입니다. 가버나움은 스불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 두 지파 지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또한 그곳은 갈릴리 호수 해변에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본문은 이미 오래전 이사야가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사실 것임을 미리 예언하였고 그 예언대로 이루어졌다고 말씀합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갈릴리는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혼혈도 많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항상 불만이 가득했기 때문에 늘 소요가 많았습니다.

 

성경은 “‘흑암에 앉은 백성’, ‘사망의 땅’과 ‘사망의 그늘’에 주저앉은 이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곳에 환한 빛이 비추었습니다. 가버나움은 말 그대로 ‘위로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빛 되신 예수께서 그곳에 사셨기 때문입니다. 창세 때에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곳에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생기니 질서가 잡혔습니다. 하나님의 질서가 들어서자 흑암이 깊은 그곳은 아름다운 땅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빛이 되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27:1)

 

어둔 곳에는 늘 두려움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무섭고 두렵습니다. 어찌해야 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그곳에 빛이 비취면 두려움은 이내 사라집니다. 어둠과 함께 무서움도 사라집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어둔 마음을 밝히시는 분도 예수님입니다. 우리 가정의 어둠을 밝히시는 분도 예수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은 등불이시다’ 계시록은 말씀합니다. 그 등불은 햇빛보다 더 밝은 빛입니다. 어둠이 깊을 때면 다른 곳에서 헤매지 말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을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늘 어둠 가운데 새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 어둔 맘에 역사하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믿고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이때 비로소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요? 우리는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소음이 너무 많습니다. 내면의 소음도 많습니다. 소음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늘 평화를 빼앗깁니다. 먼저 주님의 소리를 들어야 우리는 삽니다.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수요예배에 민수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첫 번째 유월절을 지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출애굽 하던 유월절이 있고 일 년이 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철저하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지켜야 할지도 세세하게 일러주셨습니다. 만일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엄히 경고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축복의 자리에서 쫓겨난다는 뜻입니다. 광야에서 쫓겨나면 살아갈 길이 없습니다. 죽게 된다는 뜻입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유월절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시신을 만져야 되는 경우에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유월절 만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들은 고민하다가 모세를 찾아가서 그들의 사정을 아룁니다. 그때 모세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잠시만 기다려라.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내가 듣겠다’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 이 사정을 말씀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달 14일에 유월절 음식을 준비해서 먹으라고 말씀하셨고 모세는 그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 유월절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입니다.

 

모세의 위대함은 ‘들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 있었습니다. 아론과 모세의 차이는 백성의 소리를 듣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소리를 듣느냐였습니다. 백성들의 원망의 소리를 들었던 아론은 결국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하고 믿고 그곳에 절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은 이런 분이라야 하고 굳어지면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상한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을 왜곡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아론이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의 소리를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깊은 곳에 나아가 주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잘 됩니다.

 

복 있는 자의 길은 유일합니다. 하나뿐입니다. 오로지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는 자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철 따라 열매 맺고 그 잎이 시들지 않으며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묵상’이라는 말은 ‘하가’라 했고 ‘우물우물’ 입에 넣고 되새김질하는 모양새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지난주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어린 양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을 했습니다. 양이 좀 보고 싶어서 양을 키우는 목장에 다녀왔습니다. 양을 매우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건초를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먹게 했습니다. 얼마나 순한지 모릅니다. 양의 따뜻한 기운이 손바닥에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 보았지요. 추운 날이지만 따뜻한 볕에 앉아서 고개를 살짝 들고 눈을 지그시 감고 계속해서 우물우물하는 겁니다. 한 마리가 아니라 많은 양이 그렇습니다. 떼거지로 ‘하가’ 묵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백성들은 한두 사람이 아니라 떼로, 모든 이들이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그 말씀을 ‘우물우물’하면서 달고 오묘한 그 생명의 말씀을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영광을 보이시기도, 능력도 주시고, 소망도 주시고, 병도 고쳐주시고, 인생의 의미도 깨닫게 하시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보여주십니다. ‘기다리십시오.’ ‘주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들어보겠습니다.’ 모세의 이 말은 참으로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여러분도 주님이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먼저 듣게 되는 복된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생각나는 대로 결정하지 말고 기도하고 기다리며 주의 음성을 듣는 중에 결정하는 새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이김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하셨습니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이기네’(찬송가 357장)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겁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어디에서 오게 될까요? 믿음은 ‘들음’에서 오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들음에서 믿음이 오게 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오게 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오는 것입니다. 시편 125편에 주님을 믿는 사람은 시온산이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흔들리지 않으며 예루살렘이 많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듯이 하나님께서 친히 둘려 진 쳐서 보호하신다고 했습니다.(시125:1-2)

 

그곳에서는 악인의 홀이 힘을 잃는다고 했습니다. 악한 이의 영향이 힘을 쓰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하나님을 믿는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이들은 늘 평강이 없고 굽어집니다. 뭔가 꼬여집니다. 창자가 굽어 있든 굽어진 곳에 치우친 이들에게는 죄인들이 달라붙는다(시125:5)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믿음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다윗은 분명 양들이 되새김질할 때마다 자신도 그들과 함께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하늘을 향하여 살며시 들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시는 신비한 즐거움을 누렸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주님의 말씀을 조용히 들어보세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주님의 말씀의 중심에는 천국이 있습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입니다. ‘가까이 왔다’는 ‘엥기켄’(ηγγικεν)입니다. 이 말은 이미 막 도착해 있는 어떤 것을 말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완료형이에요. 손님이 오기로 했는데 전화를 했어요. ‘어디쯤입니까?’ 이미 도착했어요. 문 앞입니다. 이것이 ‘엥기켄’입니다.

 

이번 주에 목사님들과 함께 어떤 모임을 하는데 한 분이 좀 늦어서 제가 전화를 했습니다. ‘어디에요’ 했더니, 이미 도착했대요. 그리고는 정말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게 ‘엥기켄’이에요. 완료형입니다. 진행형이 아니라 완료된 겁니다. 이미 도착한 것입니다. ‘천국’이 이미 도착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 γαρ)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천국이 이미 도착했으니 천국을 향해 문을 열어라. 전에 살아가던 방식을 내려놓고 이제는 이미 도착한 천국을 맞아들여서 천국의 삶을 누리라는 의미입니다.

 

마태가 말하는 ‘천국’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 오심으로 이제 인류 모든 이들이 체험할 수 있게 된 ‘하나님의 통치’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축복’입니다.”예수님이 천국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축복’을 가지고 오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제 시작되었다’입니다. 천국이 이미 왔다. 이것이 기쁨의 소식이다. 주님의 통치가 이제 시작되었다. 지금도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것은 ‘천국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실 것이라’(사9:7,37:32)

 

유명한 설교가인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 1908-1986) 목사님은 ‘life can begin again’ ‘인생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라고 하였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말씀도 정리해 보면 이 말과 같습니다. ‘life can be begun again’ ‘인생은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거야!’ ‘하나님 안에서’ ‘in God’ 또한 ‘all can be saved’ ‘모든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어!’ ‘in God’ ‘하나님 안에서’ ‘all can be happy’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될 수 있는 거야!‘ ‘in God’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이들이여, 천국은 ‘모든 사람’을 향해 외치고 있는 겁니다. ‘천국은 이미 와 있어! 예수님이 가지고 오셨어.’ 인생들은 ‘너무 쉽게 이제 저 이상은 어려워! 끝났어, 망했어, 이번 생은 망한 거야! 우리 가정은 더 이상 힘들어,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어렵겠어! 모든 것이 끝났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세요. ‘천국이 이미 왔느니라.’ 모든 사람은, 누구든지, 여러분도 예외가 아니에요. 구원받을 수 있는 거예요. 행복해질 수 있는 거예요. 문제 해결될 수 있는 거예요. 누구든지 그가 어떤 상황 가운데 있던지,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에요.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너희 집에 이미 천국이 와 있느니라. ‘엥기켄’(ηγγικεν) 택배가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엥기켄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이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마4:23)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두 형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가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도 ‘배’와 ‘아버지’를 그곳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했습니다.

 

위대한 예수님의 제자 4명이 부름 받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모두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사람을 낚는다’ 하면 요즘에는 느낌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낚다, ‘피싱’이라는 말은 안 좋게 사용될 때가 많습니다. ‘낚였다’ 말하면 불쾌한 감정이 그 말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이 대두되는 ‘보이스 피싱’도 ‘말로 사람을 낚아서’ 돈을 빼앗는 사기의 한 형태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할 때 또 생각나는 것은 ‘낚시’가 떠오르지요. 낚싯바늘에 미끼를 달아서 물고기를 유혹하고, 물고기가 물면 낚아채서 건져 올리는 것이지요. 낚싯바늘에 걸려 올라오는 물고기가 얼마나 불쌍한지 모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에서 ‘낚는’이라는 단어가 무엇일까? 저는 원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낚다’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낚시가 아니라 그물로 고기를 잡았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원어로 할리에이스(ἁλιεις) 안드로폰(ἀνθρωπων)인데, ‘사람들의(안드로폰) 어부’(할리에이스)입니다. 즉 ‘사람들을 그물로 끌어올리는 어부’라는 뜻입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끌어 올리면 물고기는 죽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 바다, 즉 흑암과 어둠, 고통과 사망의 깊은 곳에서 고통당하며 신음하는 이들을 끌어올려 천국으로 구조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보다는 ‘사람을 건져 올리는 어부’가 더 좋은 표현이 되겠습니다.

 

베드로가 지금까지는 고기를 건져 올렸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고기’만이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목욕탕에 들어갈 때 구두 닦으시는 분이 언제나 제 구두만 쳐다보시면서 ‘구두 닦으셔야 되겠습니다’ 하시는데 베드로의 눈에는 언제나 물고기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르심은 이제는 ‘사람이다’ 사람을 건져 올려라. ‘어부’라는 말 자체가 그렇습니다. ‘어’(漁) 자가 물고기 잡을 ‘어’입니다. 물고기 잡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어부’입니다. 물고기를 취미로 잡는 사람들도 많지요. 그러나 그들을 어부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어부’는 업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에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라’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밤새 수고하였건만 잡은 것이 없지만은 주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하고 순종하였을 때 배가 잠길 만큼 고기를 많이 잡고 모두가 놀라워하고 두려워했던 사건이나 요한복음의 마지막에 153마리를 잡은 장면이나 물고기를 건져내듯 사람을 건져내는 것이 부름 받은 이들이 받은 사명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초대교회의 비밀스런 상징은 물고기였습니다. 헬라어 ‘익수스’는 물고기라는 뜻입니다. 익수스(ΙΧθυς)는

I, Ιησους (이예수) 예수

X, Χριστος (크리스토스) 그리스도

θ, θεος (데오스) 하나님

υ, υιος (위오스) 아들

ς, σωτηρ (소테르) 구세주

‘이예수 크리스토스 데오스 위오스 소테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구주이시다’입니다. 이를 신앙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물고기들이 바로 ‘성도’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물고기라 할 수 있습니다. 암흑과 사망의 바다에서 건져내서 생명과 은혜의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며 자유를 누리는 구원받은 물고기(익수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내가 사람을 건져 올리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중요한 단어 하나 더 있습니다. ‘내가… 되게 하리라.’ ‘I will make’ ‘포이에소’라는 단어인데 1인칭 단수 미래, 능동태입니다. 주님께서 홀로 우리를 어부로 만들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어부’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따를 때 가능한 것이요, 주님께서 빚으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내 뒤를 따라오너라.’ 주님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신앙생활 처음이나 나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 빚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 시선을 맞추고 그분의 음성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그때 우리는 수많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 속에서 구원받기를 간절히 열망하는 영혼들을 천국으로 끌어올리는 도구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을 천국으로 건져 올리는 일에 참여했을 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주님도 기쁘고 우리도 기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요, 여러분 개인을 향한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내가 너를 사람을 건져 올리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제자들이 주님을 따랐듯 우리도 주님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따르다 보면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수많은 영혼을 건져 올리시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153마리를 건져 올리듯 우리도 주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때 감격할 것입니다. 주님께 엎드려 자신의 인생을 통해 이루신 주님의 놀라우신 일 하심을 생각하며 경배할 것입니다. 주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주님을 따르는 가운데 주님의 백성을 건져 올리는 사람을 건져 올리는 어부, 주님의 도구가 되는 거룩한 인생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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