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주일설교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
성 경: 마태복음 5:13-20
설교자: 원영만 목사
설교일: 2020. 2. 9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13-20
거룩한 주일 하나님 전에 나오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 처음 나오신 분들이나 오랜만에 방문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의 말씀으로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신 돌판을 ‘증거의 판’이라고 했습니다. 그 증거판이 담겨있는 궤를 ‘증거궤’라 했고, 그중에 궤가 놓인 곳을 ‘증거의 장막’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증거는 자신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했지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지 않으시면 어리석은 우리들은 우리의 힘으로는 그분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처음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셨을 때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그를 보내셨습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으로 애굽 땅에서 고통받던 히브리 백성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쳐나갈 수 없는 그 수렁으로부터 그들을 건져내어 내셨습니다. 그의 능하신 팔로 건져 주신 것입니다.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성도는 물에서 건져 올려진 물고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 힘으로가 아닙니다. 주님의 능력의 그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 우리를 죽음의 나라에서 건져 올려 생명의 강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막혀있던 홍해를 친히 가르시고, 그들에게 살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홍해에 무서운 적들을 모조리 수장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인도하시고, 마실 수 없는 마라의 쓴물을 맛있는 단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시어 광야에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시고 그 바위를 쳐서 마실 물이 터져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곳에 주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시험하던 땅 ‘맛사’, 주님께 대들었던 다툼의 땅, ‘므리바’ 그러나 언제나 주님께서는 자신이 그곳에 함께 계심을 그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여전히 원망과 불평뿐이었습니다. “우리 자식들이 목말라 죽게 되었다.” “우리를 죽게 할 작정이냐” 죽자고 달려드는 백성을 보며 모세는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부르짖는 모세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백성보다 앞서서 가거라’ ‘나일강을 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 ‘이제 내가 거기 호렙산 그 바위 위에서 너희 앞에 서겠으니, 너는 그 바위를 쳐라 그러면 거기에서 이 백성이 마실 물이 터져 나오게 될 것이다’
주님이 여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시험이 찾아올 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는 호렙산 바위, 신령한 바위가 되시는 예수를 바라봐라. 그리고 거기에서 주저앉아 있지 말고 앞서서 걸어 나가라. 하나님의 지팡이, 즉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지팡이를 붙들고 가야 합니다. 주님의 지팡이는 지옥의 모든 문을 부수는 지팡이입니다. 막고 있는 모든 장애물을 산산이 부숴 깨뜨리는 쇠 방망이, 쇠 철퇴입니다. 이 지팡이를 붙들지 않으면 맛사, 시험의 장소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보여줍니다. “호렙이다.” “하나님의 산 호렙을 향해가라.” “그곳에 있는 그 반석, 그 신령한 바위를 바라보고 나아가라”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시험이 찾아올 때 반석을 바라보고 반석을 향해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반석을 쳐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나아가고, 주님께 두드려야 합니다. 두드리면 열립니다.
그 다음은 아말렉과 전투입니다. 모든 싸움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싸움은 혈기로 하는 것 아닙니다. 소리친다고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싸움은 ‘기도’로 하는 것입니다. 함께 기도할 때 승리합니다. 승패는 여호수아의 전투 장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의 기도 장소에서 승패가 갈렸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전쟁, 인생의 전투도 다른 곳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소, 거룩한 성전, 그곳에서 올려지는 기도에서 결정됩니다.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을 때 이깁니다. 기도의 손이 내려오면 집니다.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을 올리시는 분은 ‘여호와’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정, 자녀, 여러분의 일터에서의 승리는 ‘여호와께’ 달려있습니다. 병마와의 싸움도, 악한 영과의 싸움도, 세상 욕망과 정욕과의 싸움도 기도의 자리에 달려있습니다. 기도하면 주님이 싸우십니다. 유일한 승리의 길은 기도의 자리에서 손을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도에 힘쓰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기도하면 이깁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와서 그동안의 일,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둘은 함께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께 예배를 드립니다.(출18:12) 그리고 공동체를 세웁니다. 질서가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사실 질서가 없었던 공동체였습니다. 그곳에서 공동체의 질서를 세웁니다. ‘마땅히 가야 할 길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려줍니다.’(18:20) 그리고 능력과 덕을 함께 갖춘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참되고 거짓이 없는 불의한 이득을 구하지 않는 지도자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웁니다.
그리고 도달한 곳이 하나님의 산 시내산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그곳에서 그분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삼일을 그곳에서 머물게 하고 셋째 날 아침, 번개, 천둥, 짙은 구름으로 덮여 있는 산 한가운데서 뿔나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옵니다. 진에 있는 모든 백성들은 두려워 떱니다. 주님께서 그곳에 내려오셨습니다. 불 한가운데 오셨습니다. 그곳은 온통 연기로 자욱합니다. 마치 가마솥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연기가 치솟고, 땅은 진동합니다. 나팔 소리는 점점 더 크게 울립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이 모세에게 들려옵니다. 산꼭대기로 부르시는 음성이었습니다. 모세는 주님의 음성을 따라 산꼭대기로 올라갑니다. 모세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백성들은 두려워 떱니다.(20:18) 멀찍이 물러섭니다. ‘어른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직접 하나님 말씀을 듣다 보면 죽을 것 같습니다. 그때 바로 그곳에서 들려주신 말씀이 율법입니다. 두려움과 떨림, 무서움과 자욱한 연기 가운데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입니다. “베일을 벗기다”, “면사포를 벗기다” 뜻이 진리라 했습니다. 자욱한 안개와 불 속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셨던 하나님은 이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드러내셨습니다. 무서움과 두려움이 아닌 부드러움과 사랑스런 따뜻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자신을 따라오는 이들을 가르치시고 병도 고치시고 하늘의 복음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산에 오르셨습니다. 제자들은 그에게 나아왔습니다.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께서는 자신 앞에 나아온 제자들에게 입을 열어 말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듯 그들을 향해 입을 여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나니”
예수님이 입을 여셔서 말씀하신 대상은 제자들이었습니다. 너희들에게 복이 있다. 여기에서 너희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천국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주님을 따라나선 제자들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내어놓고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실제 모습을 철저히 깨달은 사람들, 자신의 죄악의 비참함과 그곳으로부터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분명하게 깨닫고 애통해하는 이들입니다. 온유 겸손한 이들입니다. 자신의 죄악을 알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그분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며 오직 그곳에 구원이 있음을 알고 주의 어린 양을 의지하는 이들입니다. 주님의 자비와 주님의 긍휼하심만을 바라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겸손하며 온유한 이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가 되시는 예수 때문에 모욕과 박해를 달게 받아들이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그분이 가지고 오신 것으로부터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난함과 애통함과 겸손함, 온유함, 의에 주리고 목마름뿐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열리게 된 천국을 경험한 이들이 제자들입니다. 그들 심령에는 이미 천국이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으로 해방되었고 광야에서 여러 가지 기사와 이적을 경험하였듯이, 영적인 체험과 공급하심, 반석에서 샘물이 터지고, 기도할 때 악한 영을 이겼습니다. 제자들은 열리는 천국과 그와 동시에 악한 영의 견고한 성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새롭게 세워진 질서, 새로운 생명의 신선함도 경험한 이들입니다.
그들을 향해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너희는’(휘메이스) ύμείς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휘메이스)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가난, 애통, 온유, 겸손, 의에 주림으로 이미 천국을 소유한 이들이다. 즉 너희는 예수를 따르며 예수와 함께 모욕과 비난을 받는 주님의 제자들을 말합니다. “너희는 소금이다. 너희가 빛이다.” 너희는 이렇게 하면 소금이 될 수 있다. 너희는 이렇게 해야 빛이 될 수 있다.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이미 소금이다. 왜냐하면 너희가 이미 천국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빛이다. 왜냐하면 너희에게 천국이 있기 때문이다.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면, 그분이 구원의 의가 되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제자, 주님께 마음을 열고 주님을 의지하는 이들은 이미 소금이요 빛입니다. 그 모양새가 어떠하더라도 아무리 부족함이 많고 모자람이 많아도 소금인 것이요 빛인 것입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잃는다는 말은 모라이네인(μωραίνείν) ‘어리석게 되다’ 의미입니다. 온유는 양극단을 피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구간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세요. 마구간은 지저분합니다. 쌓이고 쌓인 것이 배설물입니다. 더럽습니다. 그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죄인이요 지저분합니다. 그러나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곳에는 구유에 뉘이신 새아기 예수가 있습니다. 더럽고 약한 우리 안에는 예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소금입니다. 어리석게 되어 자기 자신이 소금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소금이 된 것은 우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 때문에 소금이 된 것입니다. 우리 모습 때문에 실망하다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면 무시당합니다. 밟히는데도 가만히 있습니다. 비아냥거리며 밟힙니다. 몰라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소금 됨은 우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 아무것도 없는 자입니다. 우리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소금이요 빛입니다.
세상에 소금과 빛은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드러내며,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는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우리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행하여 빛과 소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어!’ 이런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은 무엇보다도 착한 행실을 통해서 그 나라의 빛을 세상에 밝히 비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임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빛을 비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시키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마음을 쏟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바로잡으셨습니다.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시려고 가르치셨습니다. 착한 행실은 예수님께서 해석하신 율법의 의를 따라 신실하게 계명을 지켜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율법의 원래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해석하고 가르치시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아의 오심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명확하게 해석하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명확하게 드러난, 예수님께서 해석해 주신 대로 실천하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가르침을 따라야만 율법의 진정한 뜻을 온전하게 살려낼 수 있습니다. 메시아 예수에 의해서 명백하게 해석된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바탕으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의’, 이 ‘의’는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하는 곳에서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나는 율법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왔다. 다 이루러 왔다’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율법(갈6:2)이라 했습니다. 겉모습만 자유롭게 할 뿐 실제로는 노예를 만드는 율법과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율법입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은 ‘자유’입니다. 여러분은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5:13)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더는 종살이의 멍에에 붙어있지 말고 자유하십시오. 그러나 그 자유로 육을 위하는 삶을 살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이 자유는 선을 행하는 자유요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유입니다.
예수님은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인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선을 행하여 그 착한 행실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이 이미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함을 말씀하셨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소유한 이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선한 행실의 삶을 살아감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세상을 비추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초점은 매우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명확하게 한 방향을 가리키고 계십니다. 대상이 분명하고 목적도 분명합니다. 오직 하나를 지향합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보이지 않기에 늘 우리의 시선에서 놓치게 되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눈이 중요합니다. 눈이 성하면 몸이 밝아집니다. 어둡지 않습니다. 온몸이 밝습니다. 여러분의 눈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으신지요.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말씀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선을 빼앗는 여러 가지를 언급하셨습니다. 먼저 율법입니다. 율법에게 온 마음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율법의 참뜻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놓치고 ‘율법’ 자체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율법만 붙들고 율법의 정신을 놓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판단과 정죄만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없습니다. 바로 그런 이들에게 하나님을 바라보아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의 문제에만 마음을 쏟을 때 하나님께로 향하는 시선을 빼앗깁니다. 삶의 문제만 생각하면 마음이 어둡고 복잡하고 불안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아라. 하나님이 먹이신다. 그분께 구하여라. 그분께서 열어주신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문제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더욱 두드리고, 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먹고 입고 사는 걱정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먹이시고 입히시며 살게 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먹고 사는 문제가 걱정이 될 때 거기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아라. 하나님을 바라보아라.”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종교적인 활동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금식할 때, 구제할 때도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욕망에 이끌려 다니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향해서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로 시선을 향하여라.’ 온몸을 건지는 게 중요하다.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 무엇이든지 아까워 말아라. 잘라내도 괜찮다. 하나님을 보아라.” 분노의 문제, 음욕의 문제, 가정의 문제, 인생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시선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보복의 문제, 원수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게 하는 것, 어떤 이유이든 떨어내어야 합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산상수훈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재물에 마음 빼앗기지 말아라.’ 말씀합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재물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재물 때문에 하나님을 놓치지 말라.” 말씀합니다. “남을 판단하고, 남을 심판하는 일로 인해서 하나님을 놓치지 말라.”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따라가지 말라. 너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살아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그 열매로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 말만이 아니라 그러한 삶을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놓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주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말씀하셨을 때 그 ‘불법’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 향하는 시선을 놓친 이들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이들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인생의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을 놓치기 쉽습니다. 인생의 문제, 가정의 문제가 있을 때 마음이 흔들려 하나님을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을 놓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주님께서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율법에 갇혀 있는 이들, 자기 생각에 갇혀 있는 이들이 있다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예수를 보여주시며 하나님을 보여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을 명확하게 보게 하시는 안경이십니다. 세상 모든 곳, 어느 곳에나 한결같이 계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두 눈과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산상수훈은 바로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절망하는 이들, 낙심한 이들에게 나아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함을,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심을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여 이 세상에 진리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모든 작전동교회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제목 | 번호 | 작성자 | 조회수 | 첨부 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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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9 주일 설교 '모든 것을 가진 자' 이성용 목사 | 241 | 강대한 | 1 | |
20250622 주일 설교 '건강한 사회' 이성용 목사 | 240 | 강대한 | 11 | |
20250615 주일 설교 '은혜로 여기면' 이성용 목사 | 239 | 강대한 | 15 | |
20250608 주일 설교 '기도 신앙' 김의중 목사 | 238 | 강대한 | 20 | |
20250601 주일 설교 '진정한 자유' 이성용 목사 | 237 | 강대한 | 21 | |
20250525 주일 설교 '믿음을 잃었을 때' 이성용 목사 | 236 | 강대한 | 33 | |
20250518 주일 설교 '중생' 이성용 목사 | 235 | 강대한 | 34 | |
20250511 주일 설교 '부모의 말은' 이성용 목사 | 234 | 강대한 | 38 | |
20250504 주일 설교 '어린 아이를 주님께' 이성용 목사 | 233 | 강대한 | 39 | |
20250427 주일 설교 '긍휼을 배우라' 이성용 목사 | 232 | 강대한 | 46 | |
20250420 주일 설교 '보았으나' 이성용 목사 | 231 | 강대한 | 55 | |
20250413 주일 설교 '내게 주신 잔을' 이성용 목사 | 230 | 강대한 | 48 | |
20250406 주일 설교 '순례길에서 만난 복음' 이성용 목사 | 229 | 강대한 | 47 | |
20250330 주일 설교 '죽음을 넘어 사랑으로' 이성용 목사 | 228 | 강대한 | 56 | |
20250323 주일 설교 '율법을 완성케 하는 은혜 ' 이성용 목사 | 227 | 강대한 | 62 | |
20250316 주일 설교 '빛과 소금' 이성용 목사 | 226 | 강대한 | 65 | |
20250309 주일 설교 '무리에서 제자로' 이성용 목사 | 225 | 강대한 | 68 | |
20250302 주일 설교 '하나님의 모험' 이성용 목사 | 224 | 강대한 | 67 | |
20250223 주일 설교 '자유하게 하는 진리' 이성용 목사 | 223 | 강대한 | 67 | |
20250216 신년 부흥성회 셋째 날 _ 주일 공회 예배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열매' 유기성 목사 | 222 | 강대한 | 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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