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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2020년 3월 29일 주일설교_예수님은 부활이시요 생명이시다
2020-03-29 12:59:34
전미숙
조회수   49

주일설교 

 

예수님은 부활이시요 생명이시다

 

 

 

성 경: 요한복음 11:1-45

설교자: 원영만 목사

설교일: 2020. 3. 29

 

 

 

1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17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45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요한복음 11:1-45

 

 

 

거룩한 주일 하나님 전에 나오신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특별히 각 처소에서 방송을 보면서 예배하는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어주신 본문의 말씀으로 『예수님은 부활이시요 생명이시다』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죽음이 다스리고 있는 이 어둠의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둠을 빛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어둠의 영에 눌려 고통당하는 가련한 이들을 자유케 하시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생명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가지시고 이 땅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오신 분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 땅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주신 구원자이십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특별히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도 이들이 제가 하늘에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기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입니다. 이를 믿는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이를 믿는 자는 하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이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곱 개의 표적(sign)을 제시합니다. 오늘 나사로 이야기는 일곱 번째 표적(sign)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사인(sign)이 있습니다. 장로님이 정성스럽게 만든 간판입니다. 우리 교회 처음 방문하시는 분들이 교회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간판을 보고 교회가 찾기가 매우 수월해졌다고 했습니다. 일곱 개의 표적은 그 자체 이야기만으로도 중요하겠지만 그 표적이 가리키고 있는 실체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 사인(sign)은 모두 예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시신, 모든 장기가 이미 손상되었고 부패가 상당하게 진행되었기에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을 때, 이 일을 행하신 분을 보면서 이분이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면 이 일은 절대 불가능했을 거야 고백하게 됩니다. 당신은 하늘로부터 오신 분입니다. 이는 절대 의심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분이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 확실하다면 그때서야 이분이 하늘에서 가지고 오신 메시지가 무엇일까? 이분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시려고 하는 그 일은 무엇일까? 당연하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분의 말씀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말씀임을 확실하게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하늘로부터 오셨다는 표적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한 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베다니에 살고 있던 나사로라는 사람입니다. 그의 자매는 마르다와 마리아입니다. 성경에서 매우 유명한 인물들입니다. 특별히 이들은 예수님을 극진한 사랑으로 대접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에 향한 각별한 사랑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특별히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매우 값비싼 향유 옥합을 주님께 부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 나사로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는 병자였는데, 그 병이 매우 심해졌습니다. 오라버니가 위독해지자 누이들은 예수님께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보십시오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앓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간단하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기도는 단순합니다. 기도는 단순한 요청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문제를 주님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문제를 주님께 아뢰기만 하면, 주님께서 알아서 해결하신다 믿음을 가지고 아뢰는 것입니다.(ask) ‘보십시오주님,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상하고 병든 문제를 주님께 모두 보여드리시기 바랍니다. 꽁꽁 싸매 놓고서 혼자 끙끙대며 마음아리 하던 문제를 펼쳐 보이고 꺼내어서 주님께 보여드리는 것 자체가 기도입니다. 기독도는 문제를 기도로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 문제를 펼쳐 보일 때 그 문제가 사라지고 더 이상 그 문제가 문제가 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마음을 열고 여러분 마음에 있는 걱정과 근심, 상하고 찢겨진 것, 어둠과 고통의 문제들을 주님께 있는 그대로 내보이시기 바랍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이 말씀을 믿고 주님께 구하십시오.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크신 은총입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될 것은 주님께서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매우 극진히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문제는 생깁니다. 나사로, 마리아, 마르다는 매우 모범적인 가정입니다. 믿음의 가정이요, 사랑의 가정입니다.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그러한 가정에도 말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고통도 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가정이기에 실망도 더 컸을 것입니다. 나사로가 아플 때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지 않은 것도 그렇고, 오시라고 전갈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오시지 않은 것도 그렇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 젊은 청년은 그렇게 다시 살려 주셨으면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달리다굼하시면서 다시 죽음에서 일으켜 주셨으면서 왜 우리 가정의 문제는 외면하셨나요? 충분히 반문할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병이 단지 죽을 병이 아니라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이틀이나 더 머무셨습니다.

 

이틀이 지난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일어나 유대로 다시 가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10:31) 다시 유대로 가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낮에는 빛이 있으므로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밤에는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11:10)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걸려 넘어지는 분들이 있다면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놓으셔야 합니다.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10) 문제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빛은 언제나 예수입니다. 예수가 빛입니다. 예수가 없으니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길에서 예수님의 빛으로 자신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빛이 지금 있는지, 밝게 타오르고 있는지, 아니면 사그라들은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깨우겠다.”

주님! 잠들었으면 다시 일어나겠지요.”

아니다 나사로는 죽었다.” 예수께서 분명하게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았다는 것은 잘된 일이다. 이로 말미암아 너희가 믿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쁘다 어서 일어나 가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믿음에 관심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믿어야 하나님의 영광도 볼 수 있고, 믿어야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 다른 것들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다 해도 만일 믿음을 얻었다면 그것은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은 괜찮은 것 같은데, 모두 잘 되는 것 같은데, 만일 믿음을 잃었다면 그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믿음이 중합니다.

 

지금 자신의 상태를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이 계속 자라고 있습니까? 믿음이 충만하십니까? 믿음이 타오르는 횃불처럼 살아서 충만하게 역사하고 있습니까?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재물 조사를 하듯이 가정에서 쌀이 떨어졌나 곳간에 독을 체크하듯 자신의 믿음을 조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감리교도입니다. 자신의 믿음의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세상을 이김은 이것이니 믿음이니라”(요일5:4) 했습니다.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이기네.”(찬송가 357) 지금도 믿음은 보고 계시는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도 믿음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전염병에 두려움 때문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옷을 좀먹듯 그것들이 우리의 믿음을 좀먹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입은 양복에 상처가 생겨서 늘 가던 수선집에 갔습니다. 수선해 달라고 하였더니, 좀먹은 것이라고 하면서 수선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 말씀을 간직함으로 믿음을 온전하게 유지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얻고 힘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주님께 믿음을 구하세요. 성전에 나와 예배하기가 힘든 이때에도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그분만의 선하신 방법으로 우리의 믿음을 강하고 견고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분임을, 그분이 유일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임을, 그리고 그분을 통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면 우리가 있는 모든 곳에서 새로운 소망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새로운 길, 새로운 삶의 장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지난 때였습니다. 그곳에는 문상하러 온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과 2.7㎞ 정도의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는 달려 나갑니다. 그의 자매 마리아는 웬일인지 그냥 집에 앉아있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는 죽지 않았을 터인데요.” 마르다의 말속에는 아쉬움과 미련, 원망과 서운함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주님 그러나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시던지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어주실 것을 저는 압니다.”(11:22)

 

마르다는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믿음이 훨씬 좋은 여인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매우 강인합니다. 한 가정을 이끄는 실질적인 가장 같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주눅 들 때, 답답한 일을 당할 때 마르다처럼 서운한 건 주님께 솔직히 고백하고 그러면서도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입 밖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거기에 힘이 있습니다. ‘주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나리라.”(11:23)

마지막 부활의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나도 압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26)

네가 이것을 믿느냐”(26) 묻습니다.

 

!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나이다.”(27)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무슨 세례문답 같습니다. ‘신앙교육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병들어 죽어버린 이 고통스러운 시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화 같습니다.

 

뭔가 문제가 생기게 되면 우리 마음이 요동치게 됩니다.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회사의 문제, 지역사회의 문제, 국가의 문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뭔가 다른 것을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러한 때 신앙을 이야기하면 매우 어리석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신앙은 좀 여유가 있고, 한숨 돌린 다음에, 그때 가서야 찾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낙망할 때, 절망이 갑자기 찾아올 때, 삶의 문제들이 무섭게 우리를 삼키려 할 때 신앙을 먼저 꺼내어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나를 믿느냐.”

너는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있느냐.”

내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죽어도 다시 산다. 믿는 자에게는 어떠한 죽음이라도 손 못 댄다. 네가 이것을 지금 믿고 있느냐! 믿는 것이 먼저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너는 나를 믿느냐주님께서 물으시는 겁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우리 삶에 가장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이것이 정리돼야 다른 것이 정리됩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이것이 혼돈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 되어 버립니다.

 

마르다의 고백처럼 주님께서는 세상에 오신 메시야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구원이십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 하나님의 아들 되신 분임을 내가 믿습니다. 어떤 환란도 나를 상하게 하지 못함은 주께서 나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손이 가장 큽니다. 그분이 가장 크신 분임을 내가 믿나이다. 어떤 것도 그분의 손에서 나를 낚아채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이렇게 고백할 때 하늘의 평화가 임하고 하늘의 위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고백이 중요합니다. 인생의 문제가 생기면 먼저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마르다가 마리아를 조용히 부릅니다.

주님께서 너를 부르신다.”

 

집에 있던 마리아가 급히 일어서 나갑니다. 함께 있던 조문객들도 마리아 함께 일어나 나갑니다. 마리아가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 발 앞에 엎드린 마리아도 마르다와 똑같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가 우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매우 비통하고 괴로우셨습니다. 이 말의 원어의 의미는 엠브리마오마이(εμβριμαομαι) 격노에 가깝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에 그렇게 노하셨을까요. 바로 죽음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가지고 온 모든 고통입니다. 그것을 보시며 탄식하셨습니다.

 

자녀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자녀를 계속해서 낙망하게 하고 절망하게 만들어서 그 자녀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부모는 그 자녀를 그렇게 만든 존재에 대해 분노할 것입니다.

 

세상 권세 잡은 자, 악마는 죽음으로 세상 사람들을 사로잡습니다. 이 세상은 어둠의 땅입니다. 죽음의 지배하에 있는 땅입니다. 예수님도 사탄을 세상의 신이라고 했습니다. 어둠은 어디 가서 구해 올 필요가 없습니다. 또 어떤 큰 잘못이나 죄를 지어서 어둠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어둠은 빛이 없는 곳에는 언제나 그곳에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편협한 신앙에 대한 경고」에서 지금 이 시대에도 귀신이 역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당연히 지금도 역사한다 했습니다. 단지 과거 미개한 시대에서는 미신을 통해 역사하였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불신하게 만들면서 일한다 했습니다. 마귀는 매우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전에는 드러나게 일했지만, 지금은 드러나지 않게 일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마귀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자신이 마귀의 지배를 받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어둠이 역사하는 곳에는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있고 그 죽음은 인간을 생명의 근원과 단절시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망의 권세 잡은 자를 보면서 분노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시면서 사망 권세 잡은 자를 이기셨습니다. 사탄을 집어내던지셨습니다.(thrown out)(12:31)

 

세상에서 너희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예수님은 악마를 멸하시려 이 세상에 오셨고 이 일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이 말씀은 어둠이 너희를 손대지 못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말을 많이 하지 않겠다. 세상의 신의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더 이상 나에게 요구할 권리가 없다.”(he has no claim on me)(14:30, ESV)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다 이루었다”(19:30) 더 이상 죽음의 지배자가 주님께 요구할 것도, 요구할 권리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 잡은 자를 십자가에서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정복자이시며 죽음을 이기시고 세상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무덤에 가까이 가셔서 돌을 옮겨 놓으라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가 주님! 죽은 지 벌써 나흘이나 되어서 냄새가 납니다.’

 

예수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하셨습니다.(11:40)

 

하나님의 영광은 오직 믿는 자에게만 보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도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영광도 볼 수 없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사로가 살아나오는 장면을 모두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자만이 주의 영광을 봅니다. 믿지 않는 자는 못 봅니다. 볼 수가 없습니다. “믿으면 주의 영광을 보리라.”

 

주님의 말씀대로 사람들이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돌을 옮겨 놓는 것, 묶여있는 수의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는 것, 이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없습니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게 하고 자유한 가운데 편안하게 신앙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주님의 영광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도구가 되십시오. 주님의 말씀에 언제나 순종하면서 믿는 자들을 돌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도 불타오를 것입니다. 악마의 도구가 되지 마십시오. 악마의 도구가 되는 것은 그렇게도 비참하지만, 주님의 도구가 되는 것은 그렇게도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헤치는 자다주님의 일에 참여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시는 것을 저는 압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 둘러서 있는 사람들을 위함입니다.

그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시고는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죽은 자들이 내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5:25,28) 주님의 말씀입니다.

 

죽은 자가 주의 음성을 듣는다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살아 있는 자, 귀가 열린 자만 주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자가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25) 우리 교회에도, 여러분의 가정에도 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에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예배를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기도가 예배 준비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옵니다. 수족이 꽁꽁 묶인 채로 걸어 나옵니다. 얼굴에 두건을 덮여있는 채로 걸어 나옵니다. 우리가 예배에서 기대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하늘의 생명이 무엇인 줄 아니? 바로 이것이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시신 같은 인생이 일어나서 걸어 나온다. 살아난다. 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 나온다. 이것이 하늘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늘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때 일어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셨습니다. 교회는 이런 곳입니다. 복된 성도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난 성도들을 따뜻하게 환대하며 그들을 풀어놓아서 자유롭게 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살아오면서 다른 이들에 의해서 때로는 자기 자신에 의해서 여러 가지로 묶여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자유케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을 더 붙들어 매는 이들이 있습니다. 꽁꽁 묶습니다. 가만히 보면 그들 자체가 묶여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주님은 지금도 이 일에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시요 생명이십니다. 그분을 모시는 곳에는 그분을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힘을 잃게 됩니다. 걸려 넘어지는 이유가 빛이 없기 때문이듯, 죽음이 역사하는 이유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다시 살아남, 부활이 있습니다. 언제나 다시 삽니다.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 떠나갑니다. 어둠의 권세 잡은 자가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습니다. 요구할 권리도 없습니다. 그들과 상관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다.’

이 축복의 말씀이, 이 생명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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