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주일설교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십자가
성 경: 마태복음 27:11-54
설교자: 원영만 목사
설교일: 2020. 4. 5
11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그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27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3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거기 앉아 지키더라 37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45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4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태복음 27:11-54
거룩한 주일 하나님 전에 나오신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특별히 각 처소에서 방송을 보면서 예배하시는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읽어주신 본문의 말씀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의 십자가』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이번 주간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거룩한 고난주간입니다. 또한 이번 주 금요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을 기념하는 성금요일입니다. 특별히 이번 한 주간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십자가의 은총을 깊이 생각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주간이 되어야겠습니다.
언제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죽임 당하실 장소입니다. 드디어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성서의 예언대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십니다. 사람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여!”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환호성을 올립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하늘나라를 이 땅에 가지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성서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메시아이며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 자체가 ‘주께서 구원하신다’입니다. 어디에서 구원하시는가 하면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언제나 문제의 핵심은 ‘죄’입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죄가 어둠을 가져오고 악을 가져옵니다.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늘 어둠의 권세가 있습니다. 악한 세력이 지배합니다. 이를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상관없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지배합니다. 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죄가 사람들을 꼭 붙잡고 있습니다. 완전히 사로잡아 움켜쥐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주님께로 향한다 싶으면 더욱 더 붙잡아 매어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실 때 ‘내가 들리면 너를 내게로 이끈다’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간을 붙들고 있던 죄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셨습니다. 죄에 대한 모든 값을 치루신 것입니다. “이제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날 것이다.”(요12:31)(thrown out) 십자가에서 죄와 어둠은 더 이상 붙들고 늘어지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어둠의 지배자를 십자가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손길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크고 강합니다. 어떤 어둠의 세력도 그분의 손에서 우리를 낚아챌 수 없습니다.(요10:28,29) 낚아채다는 말(snatch)의 어원은 뱀(snake)입니다. 뱀처럼 재빠르게 달려드는 악마의 교묘한 움직임에도 주님의 손안에 있는 자는 안전합니다.
십자가는 하늘의 영광이 쏟아지는 곳입니다. 십자가는 하늘과 땅을 갈라놓았던 거대한 장막(커튼, curtain)이 찢어지는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마27:51) 거대한 물주머니가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거기에 물을 계속 집어넣습니다. 물주머니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부풀어 오르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느 한쪽에서 터집니다. 터진 그곳에서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광이 터져 이 땅으로 들어오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 일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찢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몸 안에는 하늘의 영광으로 가득합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몸이 바로 휘장이라고 했습니다.(히 10:20)
하나님의 영광이 이렇게 이 땅 위에 쏟아져 들어오지 못하였던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주님은 완전한 거룩 그 자체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쏟으신 주님의 보혈이 모든 것을 깨끗이 씻었기에 드디어 하늘과 땅을 가로막은 장막을 없앨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순식간에 하늘의 영광이 흘러들어왔기에 터졌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인간의 죄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곳도 십자가요, 인간의 마음 안에 하늘의 영광이 부어지게 된 곳도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은총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하늘만 갈라진 것이 아닙니다. 땅도 갈라졌습니다. 닫혀있던 무덤도 열렸습니다. 땅이 쭉 갈라지다가 바위를 만났습니다. 갈라지던 것이 바위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파다가 큰 암석을 만나면 공사가 중지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 달려 죽으실 때 갈라지던 땅을 바위가 막아서지 못했습니다.
바위는 터져버렸습니다. 여기에서 터졌다는 말과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말은 성경 원어에서 같은 단어입니다. 그 단단하던 바위가 갈라져 버렸습니다. 전에는 땅이 갈라지고 그 입을 벌리면 그곳엔 언제나 죽음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모세와 아론을 반역하여 일어섰을 때 땅이 갈라졌습니다. 땅은 갈라져 그들의 가족, 그들에게 속한 모든 집기들을 삼켜버렸습니다.(민16:31-32) 그리고 다시 닫혔습니다. 그들은 산 채로 땅속으로 들어갔습니다.(민16:33) 생매장된 것입니다. 땅 속은 죽음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 어둠의 장소, 죽음의 장소가 갈라진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이 그곳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악한 곳입니다.(막7:21) 악한 생각이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 안에서 나옵니다. 마음이 입을 통해서 쏟아져 나올 때 그렇게도 더러운 것은 마음 자체가 더럽기 때문입니다.(마15:11,18) 그 안에는 살인, 간음, 음행,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이 가득합니다.(마15:19) 그런데 그곳이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 갈라진 곳으로 뚫고 들어간 것입니다. “죽음의 문이 견디지 못하느니라.”(마16:18)
사흘이 지나 그 땅이 다시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열렸습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제 그곳은 어둠으로 가득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밝은 빛이 가득한 곳으로 변하여 있었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주님께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 안에 흘러들어왔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변하여 새롭게 됐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땅을 가르시고 주님께서 들어오시듯 인간의 마음을 가르시고 주님께서 들어오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죽음을 이기신 승리입니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생명을 가져왔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모든 땅은 갈라집니다. 바위는 터집니다. 음부의 세력은 이기지 못합니다. 집어던지셨습니다. 별이 떨어지듯 떨어졌습니다.(눅10:19) 내쫓겼습니다.(계12:9) 믿으십시오. 그동안 굳게 잠겨있던 문제는 갈라져서 열릴 것입니다. 도저히 움직이지도 않을 것 같던 바위 같던 문제들도 터질 것입니다. 뿌리째 뽑혀 들려서 먼 곳에 던져질 것입니다.
십자가는 연약한 우리의 육신을 가르고 그곳에 하늘의 능력과 영광으로 채워주시는 곳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구나”(마 26:41)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약하다는 말은 병들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병들어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병들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힘이 없어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제자들이 예외 없이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큰 소리치던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주님이 달리시는 그날 새벽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나중에는 저주까지 했습니다. 목숨이라도 내어놓겠다던 그였지만 주님을 배신했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힘과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사도들이 사도 되는 것은 그들의 똑똑함 때문도 아니요, 그들이 능력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가 사도 된 것은 십자가 때문입니다. 그들이 십자가를 통과했을 때 사도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다음에야 그들은 오직 주님만을 붙드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보혈의 공로 힘입어 교만한 맘을 버리네(주 달려 죽은 십자가, 찬송가 149장)
십자가를 아직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직도 주님의 도움 없이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깨달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겸손히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보게 됩니다.
주님은 십자가 지시는 날도 기도하셨습니다. 더욱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마26:38) 기도하시니 그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깨어 기도하지 못했던 제자들은 모두 시험 들었고 도망갔습니다.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 기도해야 갈 수 있는 길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주님께서 가신 길이요, 하나님께서 명하신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그것만이 주님을 따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 길은 우리도 주님처럼 겸손히 기도해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수난 사건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가 언급될 때마다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넘기다’ (hand over)입니다. 성경에는 ‘판다, 넘기다, 배반하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넘기는 자’입니다. 은 삼십에 넘겼습니다. 너무 싼 값에 넘겼습니다. 은 삼십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노예 하나에 해당하는 만큼의 액수입니다. 고귀하신 예수님을 너무 싼 값에 넘겼습니다. 대제사장에게 넘겼고, 대제사장은 빌라도에게 다시 넘겼고, 빌라도는 군중들에게 넘겼고, 다시 이방인 군인들에게 넘겼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넘겨지셨습니다. 그리고 끝내 사망에게 넘겨지셨습니다. 물론 유월절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시기에 유월절 어린 양을 제사장에게 넘기듯 넘겨지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우리도 너무 쉽게 예수님을 넘깁니다.(hand over) 가룟 유다가 그렇게도 뼈저리게 후회한 것을 우리는 지금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다른 것과 너무 쉽게 바꿉니다. 예수님을 팔아 치웁니다. 넘겨 버립니다. 언제 넘겨졌는지도 모르게 처분합니다. 이유는 다양하겠으나 주님을 넘긴 사람들은 반드시 후회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그 값진 것을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그 값어치를 발견한 사람은 쉽게 빼앗기지 않습니다. 지키고 또 지킵니다. 다른 것을 다 준다 해도 내놓지 않습니다. 고이 간직합니다. 오히려 다른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삽니다.(마13:44-46) 어리석은 자는 먼저 예수님부터 넘깁니다. 예수님이 생명입니다.
사랑하는 작전동교회 모든 성도들은 주님을 넘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내놓는다 해도 주님을 넘기면 안 되겠습니다. 주님을 꼭 붙드십시다. 주님을 안고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그분에게 생명이 있습니다.(요6:68) 요즘 같은 때는 주님을 넘기기가 너무 쉽습니다. 그러나 넘긴 자는 후회합니다. 반드시 후회합니다. 가룟 유다처럼 후회합니다.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에서 악마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 이때는 어둠의 때요, 어둠의 지배자가 심판받는 때입니다.(요12:31) 심판의 때는 모든 것이 드러나는 때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빌라도의 재판에서 일어나는 일,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기는 일에 있어서도 이해가 잘 안 가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대제사장의 집에 모여서 예수를 이번 명절에는 처리하지 말자고 굳게 결의했음에도(마26:3-4) 그들의 마음이 급변한 것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했냐 하면 어둠의 지배자에게 지배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중들도 그렇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 외치던 이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니 말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언제나 다만 악에서(evil one) 구하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게 되고 악의 도구가 되기가 너무나도 쉽습니다. 웨슬리 목사님 말씀처럼 지금 악마는 매우 지혜롭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일합니다. 우리가 늘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매우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악과 모든 악한 자가 아무리 득세하고 판치더라도 하나님의 구원과 그분의 섭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주님의 승리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이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이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9)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언제나 우리의 눈에는 기이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장면을 바로 앞에서 본 사람들도 그 일이 무슨 일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에야 성령이 오셔서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신 다음에야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을 밝히 알 수 있었습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11:40)
주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너무 흔들리지 말고 주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오직 믿는 자에게만 보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마24:13)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이미 알았습니다. 저들의 시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그는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풀어주려고 합니다. 그 당시 명절에는 군중들이 원하는 사람 하나씩을 풀어주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바라바냐? 예수 그리스도냐? 빌라도는 군중들에게 묻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바라바의 이름도 ‘예수’입니다. ‘바라바’라 불리는 예수냐? 아니면,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냐? 묻는 것입니다. 군중들은 바라바를 택합니다. 칼의 힘, 인간의 힘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쳐 외칩니다. “그가 무슨 일을 하였다고 그러느냐?” 빌라도가 놀랍니다.
빌라도는 민란이 날까 봐 걱정이 되고 더 이상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야에 물을 가져오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 피에 대해서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죄가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스로 죄가 없다 주장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는 자신의 죄가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곳에서 무죄하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두 사람이 기도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입니다.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바리새인과 자신의 죄를 깊이 인정하는 세리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죄를 용서받고 깨끗하게 된 사람은 바리새인이 아니고 세리입니다.(눅18:13-14)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의롭다 인정받은 사람은 ‘세리’이다.”(14)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빌라도는 ‘내 책임이 아니다’(마27:24) ‘너의 책임이다’(your responsibility)라고 말합니다. 대제사장도 가룟 유다에게 “그것은 너의 책임이다”(마27:4) 했습니다. 어둠이 역사하는 곳에는 늘 책임 전가가 있습니다. 아담 때부터 계속해서 그랬습니다. 우리도 늘 그렇게 책임을 전가하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가셨습니다. 기도하며 가셨습니다. 그분에게는 ‘책임 전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십자가를 친히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고통입니다. 극심한 고통입니다. “근심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마26:37)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38)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39)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39,42) 이런 고통 중에 기도하시며 가신 길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채찍질을 많이 당하셨습니다. 모욕도 당하셨습니다. 군인들은 침을 뱉고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십자가에 손과 발이 못 박히셔서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목이 마르셨습니다. 간악하고 사악한 군인들은 몰약을 탄 포도주가 아니라, 쓸개를 섞어놓은 포도주를 예수님께 올려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맛이 쓴 것을 보시고는 마시기를 거절하셨습니다. 보통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어서 고통을 경감시켜 주는 데, 매우 쓴 쓸개를 섞은 포도주를 주며 조롱한 것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21:23)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머리를 흔들면서 모욕하였습니다.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그러면 내가 믿을 터인데!” 조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할 때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하며 드러내놓고 시험했습니다.(마4:3,6) 이제 사탄은 대제사장의 입, 사람들의 입을 벌려 시험합니다. 숨어서 시험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내려와라’ 사탄은 사람의 입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합니다. 많은 경우에 그렇습니다. 사탄이 어떠한 모양으로 우리를 시험하든 우리는 주님처럼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며 이겨야 합니다.
세 시간이 지난 후 어둠이 그곳을 완전히 뒤덮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외칩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엘리야를 부르는가?” 말합니다. 한 사람이 달려갑니다. ‘신 포도주’를 적셔서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살게 해서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려는 요량입니다. 매우 잔인한 수난의 현장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마27:50) 그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고,(51) 땅이 흔들리고 바위가 갈라지고,(51)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의 몸이 살아났습니다.(52)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약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 우리가 병이 나았도다(사53:5)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라(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주님께서 이렇게 수난당하심은 우리를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고쳐주셨고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으며 하나님께 나아갈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던 백부장은 “진실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마27:54) 고백하게 됩니다.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곳에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있게 됩니다. 주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한 주간 이런 고백이 있게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천국 비유를 주시면서 우리가 있는 곳에는 늘 가라지(마13:24)가 섞여 있다고 했습니다. 원수가 뿌리고 간 것입니다. ‘뽑아낼까요’ 하니 예수님은 ‘그대로 두라’(30)고 했습니다. 또한 천국은 마치 그물에 고기를 한가득 담아 올리는 것과 같다(47) 하였습니다. 그물(가두리 양식장)입니다. 심판 때에야 끌어 올립니다. 그리고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구별한다고 했습니다.
언제나 믿음의 성도들 옆에는 섞여 있는 이들(민11:4)이 있습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듯, 우리도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주님을 절대 놓치지 말고, 달려갈 길을 온 힘을 다해 가야 하겠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도 ‘주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이방인들도 언젠가는 ‘와! 저분은 정말 진정한 신자구나’ 하는 날이 있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장소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언제나 붙들어야 할 십자가, 그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한 주간 되십시오. 주님께서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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